“한국과 이탈리아는 둘 다 가족을 중시하고, 문화와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2일 이탈리아 ‘공화국 선포의 날’ 행사를 앞두고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만난 페데리코 파일라(62) 이탈리아 대사는 지난 4년 간의 한국 생활 소회를 묻는 질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한국과 이탈리아의 관계에 대해 발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지난 2019년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 부임해 올해 임기를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그는 “K팝이나 K드라마와 같은 콘텐츠를 접하며 자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양국간의 문화적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다”며 “언어와 문화를 포함해, 한국의 기술이나 경제를 공부하려는 이탈리아 학생들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파일라 대사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가장 큰 공통점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고 했다. 문명의 발상지이자 국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유산으로 여겨지는 이탈리아처럼, 한국에서도 경주와 전주 등 옛 역사를 담은 도시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수도인 서울은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동시에 전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는 2030 엑스포에서 부산과 로마가 후보 도시로 경쟁하는 것에 대해서도 “로마가 엑스포 유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통과 혁신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라며 “유치 여부와 관계없이 두 도시 모두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탈리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식이다. 이탈리아를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피자, 파스타, 에스프레소, 젤라또 등 이탈리아 식문화는 한국인에게도 친숙하다. 그는 한국 내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했다. 피자와 파스타 등 일반적인 음식뿐 아니라 이탈리아 현지의 맛을 살려낸 로컬 푸드들도 많이 접할 수 있는게 놀랍다는 것이다. 맛 뿐 아니라 대부분 식당이 이탈리아에 온듯한 인테리어를 연출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대사가 꼽는 이탈리아 식당은 어디일까? 추천을 부탁하자 그는 “매년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에서 선정하는’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Ospitalita’ Italiana)’ 리스트(https://itcck.org/ko/activities/special.php)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는 전 세계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중 우수한 레스토랑을 선정 및 인증하고 글로벌 이탈리아 레스토랑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상공회의소가 만든 시스템이다. 매년 11월 셋째 주 ‘세계 이탈리아 음식 주간’ 기간에 발표·시상한다.
한국에 오기전까지는 한국 음식을 맛본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그는 이제 김치나 삼겹살은 물론 만두와 막걸리까지 즐기게 됐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는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냉면을 꼽았다. 대사는 “K팝의 뒤를 잇는 것은 음식이 될 것”이라며 K푸드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파인 다이닝(고급식당), 퓨전 등 한식이 다변화하는 경향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했다.
파일라 대사는 지난 2017년부터 이탈리아 외교부의 에너지 담당 정책국장을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환경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보다 에너지 전환이 쉽다”며 “조금 더 늦어지면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에너지 정책을 설명하며, 누적된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파일라 대사는 “이탈리아에서 대부분 전력 회사는 민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국보다 전력 가격이 높으나 지속 가능성이 있다”며 “국가 주도의 전력 배분 구조에서 적자를 벗어나긴 힘들다”고 말했다.
파일라 대사는 한국 대사로 일하기 전,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 주재 이탈리아를 지냈고, 홍콩에서도 총영사직을 지냈다. 홍콩에서 중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한 파일라 대사는 “아시아 사람들은 역동적이고, 공동체가 만드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며 “서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다양한 즐거움의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