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휘원 기자

“4·19 시절부터 가르침과 깨우침을 줬던 사상이 민세(民世) 안재홍의 중용(中庸)이었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시인 김지하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족운동가 민세 안재홍(1891~1965) 선생의 동상이 11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아리랑고개에 세워졌다. 성북구청은 이날 민세의 손자 안영돈씨 등 후손들을 초청해 동상 제막식을 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장 강지원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경기 평택 출신의 민세는 1914년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중 귀국한 뒤 3·1운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1950년 납북될 때까지 꾸준히 독립운동을 펼쳤고, 9차례에 걸쳐 총 7년여 동안 투옥 생활도 했다.

언론인으로서 신간회 창립도 주도했다. 1924년 시대일보 논설위원으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27년부터 신간회 총무간사로 활동하며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 대회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1924~1932년 조선일보에 재직하며 주필과 발행인, 부사장을 거쳐 사장을 지냈다. 이 기간 사설 980여 편, 시평 470편 등 총 1450편의 글을 실었다.

돈암동은 1941년부터 1950년 납북될 때까지 민세가 살던 곳이다. 동상 건립은 돈암동 주민들의 건의를 받아 성북구가 주도했고, 성북구 토박이 예술가인 윤진섭씨가 디자인 및 제작을 맡았다. 동상은 높이 180cm의 알루미늄 주물로 만들어졌다. 특이한 것은 왼쪽 팔과 배 부분이 사라져 있는 모양인데, 이는 역사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잊히고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