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공동 각본가 레슬리 패터슨이 19일(현지 시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세계 정상급 운동 선수가 대학에서 극문학을 배운 뒤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다. 소설 같이 들리지만,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넷플릭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공동 각본가 레슬리 패터슨(43)의 실제 이야기다.

영국 더타임스는 25일 각본가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트라이애슬론 세계 챔피언 출신 패터슨을 인터뷰해 그의 이야기를 전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패터슨은 13세에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해 1997년 스코틀랜드 주니어 트라이애슬론 선수권 우승, 2000년 세계 주니어 듀애슬론 선수권 준우승을 거머쥐는 등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올림픽 출전이 꿈이었으나,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종목에서 패터슨의 약점이었던 수영 비중이 커지고 강점이었던 오프로드 달리기가 점차 사라지면서 2002년 한 차례 은퇴했다.

레슬리 패터슨이 2021 엑스테라 트라이애슬론 미국 대회에 출전한 모습. /레슬리 패터슨 인스타그램

패터슨은 이후 새 길을 걸었다. 영국 러프버러 대학교에 진학해 희곡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현재 남편을 만났고, 남편이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교수로 재직하게 되면서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패터슨은 샌디에이고 대학에서도 극문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땄다. 영화 산업을 공부하고자 연기 학교를 다니고 영화 오디션도 보러 다녔다. 이 과정에서 ‘서부 전선 이상없다’를 함께 쓴 이안 스토켈을 만났다. 이안 스토켈은 패터슨이 오디션을 봤던 영화의 작가였다.

패터슨과 스토켈은 함께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명의 독일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했다. 2006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전쟁 영화를 만들 제작사를 찾기 쉽지 않았고, 소설의 판권도 몇 년마다 갱신해야 했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만뒀던 트라이애슬론도 다시 시작했다. 대회에 나가 받는 상금을 영화 제작을 위해 썼다.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2007년 스코틀랜드 선수권에서 우승했고, ITU(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 크로스 트라이애슬론 세계 선수권 우승 2회(2012·2108)와 오프로드 대회인 엑스테라 트라이애슬론 세계 선수권 우승 3회(2011·2012·2018)를 거머쥐었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포스터

결국 원작 소설의 판권을 산 지 16년만에 결실을 맺었다. 그 사이 넷플릭스가 영화 산업의 큰 손으로 떠오르며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제작을 결정했고, 이 영화는 영국 아카데미상 7관왕에 오른 데 이어 다음 달 12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9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뒀다.

패터슨은 “세계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면 운동선수로서 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인정을 받는 기분이다. 오스카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