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일러스트레이터 명민호씨가 충남 아산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내 그림으로 양국 간 우애가 더욱 깊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현종 기자

3만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의 참화 속에서 한국 작가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그림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70년의 세월을 두고 6·25 참전 튀르키예군과 튀르키예로 날아간 한국 구조대원이 현지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나란히 배치한 일러스트레이터 명민호(30)씨의 그림이다.

이 그림을 소개한 한 튀르키예 현지 매체의 트위터 글은 13일 오후 기준 조회 수 320만, ‘좋아요’ 수 16만 이상을 기록 중이다.

13일 본지와 인터뷰한 명씨는 “마음만큼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린 그림이 너무 큰 주목을 받게 돼 당황스럽다”며 “내 그림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더 많은 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관심을 갖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기적과 행운이 찾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에서도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가 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죽은 어린 딸의 손을 놓지 못하는 튀르키예인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신문 사진 때문이다. 그는 “생사가 엇갈린 부녀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정말 무거워졌다”며 “우리 구조대원의 현지 활약 소식을 접하고 그분들과 튀르키예에 조금이나마 힘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튀르키예 군인과 한국 구조대원이 각각 현지의 어린아이에게 물을 주는 장면을 구상한 것에 대해선 “어린아이가 피해를 보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고 나라면 저 상황에서 목이 가장 마를 것 같아 그 장면을 그렸다”며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우리는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6·25를 통해 맺은 두 나라의 우정에 대해 진작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한 튀르키예 군인 슐레이만과 그가 친딸처럼 보살펴준 아일라(김은자씨)의 사연이 영화 ‘아일라’로 제작돼 튀르키예와 한국 양국에서 개봉한 것을 계기로 튀르키예에 대한 감정이 더욱 각별해졌다고 했다.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그는 2012년 웹툰 전공으로 대학에 합격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포기하고 막노동판에 뛰어들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당시 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 함께 땀 흘렸던 동료가 세 아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한국으로 온 28세 튀르키예 청년이었다.

일상적인 주변 풍경을 섬세하고 따뜻한 터치로 그려낸 그의 삽화는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팬을 만들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클로징 일러스트를 맡았고 지난해 12월에는 그림 에세이 ‘빛나는 것을 모아 너에게 줄게’를 출간했다.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6·25 참전 용사를 비롯해 군인, 소방관, 환경미화원 등을 힘든 곳에서 사회를 지탱해주는 이들도 자주 보인다. 그는 “개인적으로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직종이라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이 제 그림을 보고 한 번쯤 이분들에 대해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 모르게 본인의 일을 하시는 청소부 아주머니처럼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하고, 또 기억돼야 할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