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남극점을 홀로 도달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한 시간이 많아요. 하지만 사람이 생각보다 약하지 않더군요. 일단 부딪쳐 봐야 제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겁내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2008년 28세의 나이로 한국인 최연소 7대륙 최고봉 완등 기록을 세운 여성 산악인 김영미(43·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대장은 지난달 17일 또 다른 대기록을 세웠다. 바로 식량과 연료 등 중간 보급을 받지 않고, 팀원도 없이 홀로 50일 11시간 37분 만에 남극점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 완주로 김 대장은 이른바 ‘무보급 단독’으로 남극점 완주에 성공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첫 아시아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14일 오전 서울 명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김 대장은 “오래전부터 외국 보고서 등을 참조하며 세심하게 준비해왔고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으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에베레스트, 암푸1봉 등 수많은 등정을 해왔지만 정신적인 부분보다 육체적, 체력적 고통이 더 크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김 대장이 처음부터 이번 남극 탐험에 홀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예전에 2명의 노르웨이 여성 등반가가 연을 이용해 남극을 횡단하는 내용의 책을 읽고 친한 친구와 함께 둘이 꼭 남극을 가자고 약속했었다”며 “그 친구가 가정을 이루며 그 꿈은 포기해야 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남극 탐험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더라”며 “혼자라도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내 남은 에너지를 쏟아보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이번 여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기온과 바람 등 날씨를 꼽았다. 특히 남위 83~84도 부근을 지나면서 텐트도 펴지 못할 만큼 강한 초속 12m의 블리자드(눈보라)가 찾아온 것이 고비였다. 그는 “그 지점에서 거의 방전에 이를 뻔했다”고 회고했다. 체력 부담도 컸다. 김 대장은 남극 탐험에 대비해 근육량을 늘리며 체중을 5kg 찌웠다. 남극의 강한 바람에 맞서 110㎏이 넘는 썰매를 끌고 이동하는 데 필요한 열량을 계산해 도전 중 매일 4500칼로리를 꼬박꼬박 섭취했다. 하지만 남극에서의 체력 소모는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몸무게를 재니 14㎏이 빠져 있더라“며 웃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한국에서 가져온 녹음 파일이었다. 그는 “지인들의 응원 멘트,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 설악산 동굴의 물소리, 바람 소리를 녹음해 갔던 것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김 대장은 2015년 한 인터뷰에서 롤모델로 고(故) 박영석(1963~2011) 대장을 꼽은 바 있다. 아직도 변함없이 박 대장을 존경하냐고 묻자 그는 “스승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데 있다”며 “멋있는 팀에서 많이, 재밌게 배웠기에 여전히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산을 다니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견디는 용기를 배운 저는 태생부터 산악인입니다. 앞으로도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등반을 한 ‘산악인 김영미’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