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 워시로 머리를 감는 일도 있고, 샴푸로 샤워할 때도 있어요.”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일(54)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이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회장은 “음성 인식, 터치스크린 같은 기술 발전으로 세상은 좋아졌다고 하는데 시각장애인들이 느끼는 벽은 더 높아지고 있다”며 “점자가 보편화돼 우리도 비장애인들처럼 문자로 일상적인 생활을 누리고 싶다”고 했다.
매년 11월 4일은 1926년 송암 박두성(1888~1963)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발표한 것을 기념하는 ‘한글 점자의 날’이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여덟 살 때 완전히 시력을 잃은 김 회장은 교육학 박사로, 2001년 조선대 특수교육과 교수로 임용됐다. 올해 4월부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을 맡았다. 50여 단체·기관과 26만 등록시각장애인이 연합한 연합회는 시각장애인 권익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 회장은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전례 없이 빠르지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누리는 혜택의 격차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최근 아파트 도어록이나 승강기에 터치스크린 형태의 디스플레이 보급이 늘고 있는데 온전히 촉각에 의존해야 하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버튼을 구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김 회장은 “가족이 올 때까지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고 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승강기 내 층수 버튼에 부착한 항균 필름도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됐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부족한 상태다. 김 회장은 “신간이 나오면 점자화될 때까지 빨라도 3~4개월이 걸린다”며 “지식 정보 사회를 살고 있는데 논문, 보고서 같은 자료를 곧바로 볼 수 없으니 항상 지체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자와 점자를 상호 호환해주는 점자 정보 단말기의 경우 한 대당 6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개인이 구매하는 것이 쉽지 않다. 김 회장은 “지하철을 타더라도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위해 각각의 언어로 안내 방송을 해주지 않느냐”며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문자를 자유롭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김 회장은 “예전에는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을 보면 ‘봉사 지나간다’고 외치고 식당 주인은 영업을 안 한다며 쫓아내기도 했다”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시각장애인들의 제한된 정보 활용 능력 때문에 안마사를 제외하면 여전히 직업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돼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기술 환경이 장애인들이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시각각 변해 다른 직업을 찾기가 어렵다”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용 직업능력개발원 신설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