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탐진강의 저자 이판식씨

“지난 역사를 후손들이 안고 사는 것이 너무도 가슴 아픕니다.”

전남 장흥의 동학 접주(동학 지방 조직의 책임자)이자 농민 봉기의 주도자 이방언(1838~1895)의 일생을 소설 ‘탐진강’으로 그려낸 이판식(57) 전 광주지방국세청장은 19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제는 동학군의 후손과 관군의 후손들이 서로 용서하고 탐진강의 강물처럼 함께 흘러야 한다”고 했다. 탐진강은 동학 농민군의 최후 격전지인 전남 장흥군 장흥읍 석대들에 있다. 3만여 동학군이 마지막으로 석대들에서 항전, 3000여 명이 일본군과 관군에게 희생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석대들은 전북 정읍 황토현, 충남 공주 우금치, 전남 장성 황룡촌과 더불어 동학의 4대 격전지이다.

이 전 청장은 ”8년 동안 자료를 찾고, 현장을 답사하고, 관련 분야 사람들을 만났다”며 “다큐멘터리식으로 당시의 상황과 이방언의 일생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퇴직한 후 10월 책을 출간했다. 이방언은 조선 전기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문화의 후손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통 성리학을 배웠다. 그러나 성리학을 비판하고 새 세상을 열고자 하는 동학을 수용했다. 이 전 청장은 “어떤 계기와 고민을 통해 이방언이 동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그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 탐진강의 저자 이판식씨

장흥 태생인 이 전 청장이 어린 시절부터 이방언이나 동학운동에 대해서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집안 사람들이 ‘참혹했던’ 동학운동에 대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전북 정읍세무서장으로 근무하면서 동학농민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읍은 동학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의 태생지다.

장흥에선 관군들도 동학군도 서로에게 희생당했다. 이 전 청장은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아픈 역사의 뜻을 되새길 때”라며 “용서하려면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글을 썼다”고 말했다.

이방언은 1894년 전북 백산(당시 고부군)전투에서도 농민군을 이끌었고, 장성 황룡촌 전투에서는 ‘장태(대나무로 만든 원통형 물건으로 방패 역할을 함)’를 활용해 승리했다. 당시 ‘장태장군’ ‘남도장군’ 등으로 불렸다. 석대들 전투에서는 대패하고 체포된 이후 석방되었으나, 관군에 다시 체포돼 아들과 함께 장흥에서 참형을 당했다.

/광주광역시=권경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