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행해진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쫓는 미 법무부 신설팀의 고문을 맡은 엘리 로젠바움 전 특별수사국장. 그는 나치 전범 100여 명을 색출해 낸 36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미 법무부

36년간 100명이 넘는 나치 전범(戰犯)을 잡은 미국 법무부 베테랑 직원이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색출하는 임무를 총괄하게 됐다. 주인공은 일명 ‘나치 사냥꾼’이라 불리는 엘리 로젠바움(67) 전 미 법무부 특별수사국장. 미 법무부는 21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범죄와 잔혹 행위를 행한 자들을 잡을 ‘전쟁 범죄 책임팀’을 새로 만들고, 36년 경력의 베테랑인 로젠바움 전 국장을 고문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미 법무부는 메릭 갈런드 미 법무부 장관과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의 만남 이후 특별팀 신설을 결정했다. 로젠바움이 이끌게 된 팀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벌인 범죄 행위에 대한 증거 수집, 법률 분석 등의 업무를 맡을 예정이다. 미 국적 기자들에 대한 살해·상해 등 미국이 관할권을 가지는 사건들은 직접 수사한다.

로젠바움은 ‘전설의 나치 사냥꾼’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인 유대인 아버지를 둔 그는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왔다. 1979년 인턴으로 처음 법무부에 들어온 뒤 특별수사국에서 공판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았다. 1984년 법무부를 나온 그는 세계유대인회의의 고문을 맡았고, 1988년 법무부로 돌아와 1994년부터 2010년까지 특별수사국장으로서 나치 전범 색출을 이끌었다. 현재는 법무부 인권집행전략정책국 소속이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로젠바움은 130명이 넘는 나치 전범을 추적해 이 중 100명 이상을 시민권 박탈 혹은 추방 등 법적 조치를 받게 했다.

로젠바움은 쿠르트 발트하임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나치 전범 전력을 조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1986년 오스트리아 대선에 출마한 발트하임은 2차 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해 민간인 학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발트하임은 독일군으로 참전한 것은 맞지만 비자발적으로 징집됐으며, 부상으로 대부분 기간 임무에서 열외돼 있어 전쟁 범죄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세계유대인회의 조사를 이끈 로젠바움은 발트하임이 정보 장교로서 발칸 반도에 주둔하며 유대인 추방 등 전쟁 범죄에 밀접하게 관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발트하임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로젠바움이 밝혀낸 사실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외교 사절 기피 대상(페르소나 논 그라타)’이 됐다.

이런 성과 덕분에 로젠바움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치 사냥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의 역사가 가이 월터스는 “그는 100명 이상의 나치 전범을 잡아들였다”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치 사냥꾼”이라고 평가했다. 2013년엔 로젠바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출간돼 미 뉴욕타임스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로젠바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치 사냥꾼’이라는 평가에 대해 “내 일을 아마추어도 할 수 있는 스포츠 또는 게임처럼 들리게 한다”며 “사냥꾼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갈런드 미 법무부 장관은 “전범들이 숨을 곳은 없다”며 “우리는 모든 책임을 끝까지 추궁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