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현지 직원 17명이 징집돼 전쟁터로 갔는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듯합니다. 직원들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의 연속입니다.”
최하영(50) 포스코인터내셔널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 곡물터미널 법인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4개월째 접어들자 조급하다고 했다. 미콜라이우는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에서 약 50㎞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미콜라이우 곡물터미널 최고 책임자인 그는 전쟁이 발생하면서 터키 이스탄불로 대피했다가 지난 4월 말 한국으로 긴급 귀국했다. 현장 직원들과 전화, 이메일, 텔레그램을 통해 소통 중인 그는 “최근 직원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는 240명 현지 직원들의 안전을 가장 먼저 챙긴다”라고 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곡물터미널은 해외에 있는 한국의 유일한 식량 기지다. 지난 2019년 설립 후 연간 100만t의 곡물을 한국·중동·유럽·북아프리카로 내보낸다. 한국으로는 18만t의 곡물을 수출한다. 우리나라가 연간 수입하는 곡물 1700만t에 비하면 소량이다. 하지만 그는 “왜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고, 식량 창고라고 하는지 실감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이곳은 한국의 식량 에너지 창구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최 법인장은 “미콜라이우 상황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 미국, 중국 등이 운영하는 7개 곡물터미널이 있는데 얼마 전 헤르손에서 포탄이 날아들어 인접 화물터미널이 파괴됐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곡물 저장고가 피해를 보면서 저장량이 5700만t서 4400만t 규모로 축소됐다”며 “하루 빨리 전쟁이 종식되지 않으면 세계 식량 위기는 더해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곡물터미널은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가동을 중단한 뒤 최근 부분 재개에 나섰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해상이 봉쇄돼 터미널에 보관되어 있는 곡물을 트럭으로 육상 출하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서부를 거쳐 루마니아, 불가리아, 몰도바 등 육로로 수출하는 방식이다.
최 법인장은 원래 우크라이나에서 철강·화학 원료 수입 업무를 했다. 2010년 지사 설립 후 지방 출장을 다니다가 엄청난 규모의 곡물 출하 현장을 보고 본사에 곡물터미널을 직접 제안했다. “호기심에 끝없는 트럭 행렬을 따라갔는데 목적지가 흑해 오데사, 미콜라이우 등 항만이었다”라며 “곡물 출하 현장을 눈으로 보고 곡물터미널 설립을 제안해야겠는 결심을 했다”고 했다. 당시 본사 경영진은 곡물터미널 설립 제안에 반색했다고 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1억 달러 가까운 투자를 했다. 그는 “식량 에너지에 대한 확고한 인식 덕분에 곡물터미널이 탄생했다”고 했다.
최 법인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식량 시장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통감한다”라며 “에너지와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나 고통을 당할 수 있다”라고 했다. 특히 그는 “식량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 정부는 쌀을 비축하고 있지만, 국제 곡물시장에서 쌀은 전략물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밀, 옥수수, 사료 등을 비축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이 일찌감치 1970년대부터 해외 식량터미널 개척에 나서면서 정부의 지원하에 세계 식량기지 구축에 성공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국내 수입 곡물 대부분이 대형 글로벌 공급 업체에 의존하고 있어 언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며 “정부가 식량 도입선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