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무대에 한 번 올라갈 적마다 수명이 50일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피아니스트 임동혁(37)이 15일 간담회에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2001년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최연소 우승 이후 퀸 엘리자베스·차이콥스키·쇼팽 등 이른바 3대 콩쿠르에 모두 이름을 올린 연주자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무대 공포증이 있다. 무대에 올라갈 적마다 떨리고 예민한 편”이라고 말했다. 극복 비결을 묻자 그는 “꾸역꾸역하는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한국은 손열음·김선욱·선우예권·조성진까지 자타 공인의 피아노 강국이다. 그 선두 주자가 바로 임동민(41)·동혁 형제다. 이들 형제는 1996년 청소년 쇼팽 콩쿠르 1~2위에 나란히 입상했고,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도 공동 3위에 올랐다.
동생 동혁은 2002년 ‘피아노의 여제(女帝)’로 불리는 명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추천으로 데뷔 음반을 발표했고 같은 해 LG아트센터에서 데뷔 독주회를 열었다. 미소년처럼 앳된 미소와 타고난 음악성 덕분에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처음으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다”(음악 칼럼니스트 이상민)고 할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당시 팬 카페 회원만 4만여 명에 이르렀다. 그는 간담회에서 “10~20대 시절에는 밤을 새우고 연주해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체력이 부럽다”고 말했다. 가장 후회하는 건 “술 담배를 배운 것”,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건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임동혁은 ‘피아노 악동’으로 불릴 만큼 논란도 몰고 다녔다.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당시 3위에 올랐지만 ‘편파 판정’을 주장하며 수상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수상 거부라는 꼬리표가 경력에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벨기에 여왕이 주는 상을 거부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싫어하는 분들도 계셨다”며 “지금이라면 안 하는 게 맞겠죠”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는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아서 슈베르트의 후기작인 피아노 소나타 20~21번으로 6집 음반을 발표하고 전국 투어에 들어간다. 오는 18일 안산, 19일 성남, 5월 12일 경기도 광주, 13일 울산,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6월 1일 아트센터인천의 순이다. 즐겨 듣는 슈베르트 후기 소나타 음반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딱히 레퍼런스(최고의 명연주)로 삼는 음반은 없다. 내 주관적 해석이 확고해서 남의 연주는 안 들어오는 것 같다”고 답했다. 철이 든 것 같았지만, 특유의 꼬장꼬장한 음악적 자존심만큼은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