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한 공연을 마친 폴란드 명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5)이 한국 젊은 피아노 영재들의 ‘일일 교사’가 됐다. 지난해 부조니 콩쿠르 5관왕에 오른 피아니스트 박재홍(23), 쇼팽 국제 콩쿠르 결선 진출자인 이혁(22), 헨레 콩쿠르 대상 수상자인 손세혁(14)군 등 3명이다. 이들은 지난 9일 지메르만에게 일대일로 비공개 레슨을 받았다.
지메르만은 1975년 만 18세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당시 최연소 우승을 거둔 명연주자. 한국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다. 당초 한국 연주자들에게 배정된 시간은 1시간씩. 하지만 이들의 연주를 경청하고 음악적 조언을 하느라,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서 5~6시간 뒤에야 모두 끝났다. 박재홍이 연주에만 40여 분이 걸리는 베토벤의 대곡(大曲)인 피아노 소나타 29번 ‘하머클라비어’를 연주하자, 지메르만은 도중에 끊지 않고 끝까지 앉아서 경청했다. 박씨는 지메르만이라는 관객 한 명만을 위해서 연주한 셈이 됐다.
지메르만은 연주가 끝난 뒤에도 5분 가까이 침묵을 지키다가 “경이롭다” “놀랍다” 같은 찬사를 보냈다. 박재홍은 “피아노를 갓 치기 시작한 아홉 살 무렵에 그가 연주한 쇼팽 작품을 들으면서 꿈을 키웠는데, 앞으로의 계획과 연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이혁은 지난해 쇼팽 콩쿠르를 위해 준비했던 환상곡·스케르초·마주르카 등 쇼팽의 작품들을 연주했다. 이혁이 쇼팽 소나타 3번 1악장의 연주를 마치자, 지메르만은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 뒤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서 1악장 전체를 다시 연주하기도 했다. 이 곡은 그의 내한 공연 연주곡이기도 했다. 이혁은 “전체적인 작품 해석은 존중해 주시면서도 테크닉이나 악보 해석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말씀해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일일 지도는 서울·대전·대구·부산 등에서 6차례 내한 공연을 마친 지메르만이 한국 젊은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마련됐다. 지메르만은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27)의 음악적 조언자로도 유명하다.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의 김용관 대표는 “지메르만이 레슨을 마친 뒤 ‘한국 젊은 영재들의 음악적 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며 피아노 교육 역시 해외에 나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격찬했다”고 전했다.
평소 지메르만은 공연의 녹음·녹화와 사진 촬영을 일절 금지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피아니스트’로도 불린다. 하지만 한국 피아노 영재들의 ‘스승’을 기꺼이 자청하는 모습에 까칠한 연주자의 따스한 속마음을 엿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