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파리 노트르담 성당 인근의 파리 항소법원에서 프랑스 새내기 변호사 50여 명의 ‘선서식’이 열렸다. 변호사로서 신의와 정직을 철칙으로 여기고, 전문 직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하는 프랑스 법조계의 전통적 의식이다.
선배 변호사도 여럿 참석한 이 자리서 유독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윤애(끌레르 리·28)씨와 그의 아버지 이준(필립 리·57) 변호사다. 윤애씨가 이날 선서를 거쳐 정식 변호사가 되면서 두 사람은 프랑스 최초의 한국인 부녀(父女) 변호사가 됐다. 한 프랑스 법조계 인사는 “부녀 변호사가 나오는 일도 드문데, 한국계는 물론 아시아계 부녀 변호사는 이번이 처음 같다”고 했다.
이 부녀 가족에겐 ‘최초’와 ‘유일’이라는 타이틀이 이미 여럿 붙어 있다. 이준 변호사는 프랑스 첫 한국계 변호사다. 1988년 파리 1대학(소르본) 법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1989년 변호사가 됐다. 그는 대한민국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독립운동가 애산(愛山) 이인 선생의 손자이자, 프랑스 최초 한국학과를 연 이옥 전 파리 7대학 교수의 차남이기도 하다. 4대가 남다른 기록을 이어온 셈이다.
이인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최초 변호사 중 한 명이었다. 일제의 법정에서 독립운동가 수백 명을 변호한 ‘항일 변론’으로 유명하다. 이준 변호사가 이어받은 바통을 다시 윤애씨가 물려받았다. 그는 서울 방배동의 프랑스 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파리로 유학, 아버지가 다닌 파리 소르본대 법학과를 나왔다. 지난해 프랑스 법학 연수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도 합격, 프랑스의 유명 로펌 중 하나인 오귀스트 드부지(August Debouzy)에 취업한 상태다.
윤애씨는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어쩐지 좋아 보여 자연스럽게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공부 비결을 묻자 “온종일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려고 했다”고 답했다. 이준 변호사는 “일이 바빠 신경을 못 써줬는데 혼자서도 잘해줘 고맙다”면서 “결코 녹록지 않은 변호사의 길을 함께 걷게 된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이준 변호사는 그동안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해왔다. 양국 간에 발생하는 기업의 법률 문제를 주로 다룬다. 현재 김앤장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한-유럽 경제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증조부가 조선과 일본의 갈등 역사 속에서 활약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가교(架橋) 역할을 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증손녀까지 가족 모두가 두 국가와 문화 사이에서 활동하게 된 셈이다.
윤애씨는 “서로 다른 두 문화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불리함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기회로 받아들일지는 자기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발전에 모두 기여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실력을 닦아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