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의 카를 라거펠트’(뉴욕타임스) ‘우리 시대의 앤디 워홀’(가디언)….
프랑스 명품 루이비통의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고급 스트리트 웨어 오프화이트를 창립한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Abloh·41)가 암 투병 끝에 28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천재 디자이너이자 선각자이며 아름다운 영혼과 위대한 지혜를 가진 버질 아블로가 유명을 달리해 충격을 받았다”고 애도했다.
2019년 심장 혈관육종 진단을 받았던 아블로는 이후 수많은 치료를 받으면서도 패션과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가구를 넘나들며 각종 패션쇼를 열고 신진 미술가를 발굴했다. 패션계의 대표적 ‘지한파’이기도 했다. 올 초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음악계는 미국이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을 세계적으로 확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밝혔던 그는 지난 4월 방탄소년단(BTS)을 루이비통 남성 글로벌 앰버서더로 임명, 7월엔 서울에서 BTS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했다. 혁오 밴드의 노래를 패션쇼 배경음악으로 삼고, 아이돌 가수 송민호를 쇼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BTS는 2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버질 아블로, 당신과 함께 일하게 돼 영광이었다. 당신은 진정 창의성 있는 천재였다”고 추모했다.
아프리카 가나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아블로는 다양성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국기를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패치와 콜라주의 완벽한 조합 중 하나로 ‘태극기’를 꼽았다. 2019년 국내에서 DJ쇼를 보여주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흥겨워했고, 그해 태극기 등이 들어간 만국기 의상을 루이비통 패션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위스콘신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공대에서 건축학 석사를 받은 아블로는 패션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는 ‘외부자’로 출발했지만 언제나 가장 ‘중심’에 있었다. 2002년 힙합 가수 카녜이 웨스트의 앨범 디자인 등을 담당하며 패션계에 발을 디뎠고, ‘파이렉스 비전’(2012)과 ‘오프화이트’(2013) 등 자신의 브랜드로 ‘고급 길거리 패션’ 장르를 개척했다. 2018년 루이비통의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다양성’의 상징이 됐다. 흑인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오른 건 164년 만에 처음이었다.
독학으로 패션을 공부한 그가 걸어온 길은 21세기 패션 디자이너의 정의를 재정립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개념미술 선구자인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이 영감의 원천이라 말해왔던 그는 옷이라는 매체를 조합·해체·편집해 새롭게 창조하는 ‘편집자(editor)’로 불렸다. “다트가 과녁에 명중하길 기다리기보다는 다트판에 다가가 꽂라”면서 자신이 ‘북극성’이라는 지향점으로 삼았던 패션계로 뛰어들어 스스로 별이 된 아블로. 이젠 그를 롤모델로 삼아왔던 또 다른 미래 세대를 향한 북극성으로 부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