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중구 문학의집 서울의 톨스토이 동상 앞에 선 블라디미르 톨스토이 러시아 대통령 문화 특별보좌관. 톨스토이의 고손자인 그는 “동상이 톨스토이의 지혜를 잘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바로 이날, 1910년 11월 22일에 톨스토이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111주년이 되는 오늘 한국에 톨스토이의 동상이 소개됐으니 특히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조할아버지인 톨스토이가 살아계셨다면 이 장소를 굉장히 좋아하셨을 것 같네요. 자연과 삶을 사랑했던 작가로서, 가을 나무들 사이에 평온이 깃든 이곳을 좋아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2일 서울 중구 문학의집 서울에서 공개된 톨스토이 동상을 바라보며 블라디미르 톨스토이(59) 러시아 대통령 문화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간밤 비에도 떨어지지 않은 남산 자락의 가을 단풍이 짙었다. 그는 러시아 문화계를 관장하는 관료이면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고손자다. 제막식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는 “동상을 뜻하는 러시아어의 어원은 기억(記憶)”이라며 “사람은 가도 동상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은 남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누구나 서울의 이 작은 ‘톨스토이 공원’을 찾아와 톨스토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단을 포함해 높이가 3m에 달하는 이 동상은 러시아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기구 ‘러시안 시즌’에서 한국에 기증한 것이다. 2017년 러시아 문화부 후원으로 결성된 러시안 시즌은 매년 한 국가를 선정해 러시아 문화를 알리고 있다. 2021년 대상국인 한국에는 톨스토이 동상을 기증했고, 러시아 문학을 소재로 한 레핀 미술대학 소장품전 ‘러시아 문학, 미술과 만나다’가 문학의집 서울에서 24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열린다.

톨스토이 특보는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잡지 기자로 일하며 문학을 포함한 문화, 스포츠, 대학 관련 기사를 썼다. 톨스토이가(家) 영지인 ‘야스나야 폴랴나’ 박물관 주변 숲의 재개발 위기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 기고한 일을 계기로 러시아 문화부로부터 박물관 관장직을 제안받아 18년간 재직했다.

톨스토이의 후손들은 현재 전 세계에 300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톨스토이 특보는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후손 회의 조직을 주도하는 등 톨스토이 유산의 계승과 보전에 앞장서왔다. 그는 “관장으로서 직업적 영향도 있었지만 톨스토이의 자손이 아니었더라도 그의 문학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나섰을 것”이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톨스토이 작품으로는 ‘카자크 사람들’을 꼽았다. “예술성이 강하고 남녀의 사랑이나 다른 인종·문화와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고 했다. 낯선 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그린 후기작 ‘주인과 일꾼’도 아끼는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밝은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지요. 톨스토이의 철학을 계승하는 일은 인간의 그런 선한 면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나 카레니나’를 열 번 이상 읽었고 ‘부활’이나 ‘전쟁과 평화’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들도 되풀이해서 읽는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다가오거나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부분들이 많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국가와 개인, 전쟁, 종교, 가정과 교육을 비롯한 여러 주제를 다뤘습니다.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현안이 되는 문제들인 만큼 여전히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톨스토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여러 나라의 언어로 계속 출판되는 이유는 그래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