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중국계 캐나다 피아니스트 브루스 류. EPA/ANDRZEJ LANGE POLAND OUT/2021-10-22 19:02:32/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안녕하세요. 아직 피아노가 능숙하지 않은 브루스 류(劉曉禹·24)입니다(웃음).”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이렇게 인사할 줄은 몰랐다. 중국계 캐나다 피아니스트인 브루스 류는 지난달 폴란드에서 열린 제18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27년부터 5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년 1위),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년) 같은 거장들을 배출한 ‘피아노의 올림픽’이다. 직전 대회 우승자(2015년)가 우리나라의 조성진이다. 흡사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가 활쏘기에 서툴다고 고백하는 격이다.

하지만 그는 18일 국내 언론과의 영상 인터뷰에서 “지금도 피아노 연습은 많이 하지 않는다” “앞으로 프로 연주자가 될지 여전히 결심하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27일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첫 내한 무대를 앞두고 있다.

류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피아노에 대한 흥미나 열정을 잃지 않도록 되도록 직업보다는 취미로 간직하고 싶다. 일상이 되는 순간, 흥미나 영감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제18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브루스 류가 대회 결선에서 쇼팽 협주곡 1번을 협연하는 모습. /쇼팽협회

그는 예전 해외 언론 인터뷰에서도 ‘피아노는 15가지 취미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카트(Kart·소형 경주용 자동차) 레이싱과 수영·체스·골프·테니스·탁구·영화 등을 즐기는 ‘취미 부자’다. 지금도 매일 수영은 거르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그는 “레이싱은 상상하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사실 피아니스트의 손에는 레이싱보다 테니스가 더 안 좋다”며 웃었다. “앞으로는 피아노보다는 레이싱 대회에서 더 우승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의 부모는 베이징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이 때문에 그는 파리에서 태어난 중국계 캐나다인이라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파리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첼리스트 요요마와도 닮은 꼴이다. 그는 “다문화적 배경 덕분에 다양성과 차이를 쉽게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류는 여덟 살 때부터 전자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에는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주관하는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영어명인 ‘브루스’는 홍콩 액션 배우 브루스 리(李小龍)에게서 딴 이름이다. 갸름하고 길쭉한 얼굴형이 브루스 리와도 닮았다. 류는 “클래식계에 데이비드와 알렉산더는 많은데 브루스를 쓰는 연주자는 나 말고 거의 없어서 기억하기도 좋다”며 웃었다.

그는 콩쿠르 우승 직후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개최국 폴란드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이미 10여 차례 연주했다. 최근 이스라엘과 일본 공연을 마치고 캐나다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흘 머물고 곧바로 방한할 예정이다. 그는 “콩쿠르 우승 이후에 피아노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며 “연주 여행 때문에 잠자거나 식사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27일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작품도 같은 협주곡이다. 그는 “앞으로도 20~30차례는 쇼팽 협주곡 협연이 잡혀 있다”며 “쇼팽을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다른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프랑스 작곡가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도 독주회에서 연주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쇼팽 전문가(스페셜리스트)로 각인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선배 우승자 조성진의 말을 들려주자 그는 “전적으로 동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