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 빌딩 숲 사이에 프랑스 대사관저가 숨어있다. 오솔길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면 한옥 처마선을 똑 닮았지만 한옥은 아닌 건물이 나온다. “한국의 위대한 건축가 김중업이 한국의 정신을 담아 지어준 건물이지요.”
여느 전문가 못지않게 대사관저 곳곳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하는 이는 필립 르포르(Lefort·65) 주한 프랑스 대사다. 그는 프랑스대사관 유튜브 채널에서 ‘앙꼬르(ENCORE)’라는 코너에 직접 출연해 한국과 프랑스 문화의 접점을 설명하는 ‘유튜버 대사님’이다. 마침 새로운 영상을 찍는다는 소식에 대사관저로 달려가 보니, 르포르 대사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건축가 김주민씨와 함께 ‘어제와 오늘의 건축’을 주제로 한창 촬영 중이었다.
프랑스어로 한참을 얘기하던 그에게서 순간 낯익은 단어가 들렸다. “‘풍수지리’ 아시죠?” 그는 “우리 대사관저에는 한국의 풍수지리 사상이 잘 녹아있다”며 “동시에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영향도 느껴진다”고 뿌듯해했다. 손님들과 만찬을 하는 다이닝룸 천장의 장식물도 자신 있게 소개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예요.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해 꾸며놓으니 아주 멋져요.”
프랑스 생클루 고등사범학교 출신인 그는 1987년 국립행정대학원(ENA)을 졸업하면서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다. 러시아와 미국⋅일본 등에서 근무했다. 한국엔 2019년 9월 부임했다.
코로나로 제약이 많았지만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 기업인 등을 두루 만나며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대사로선 이례적으로 직접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가수 스텔라 장과 만나 식사하면서 담소 나누는 모습, 방송인 파비앙과 국기원 세계태권도본부를 방문해 태권도하는 모습 등이 공개됐다. 이날 촬영한 건축 영상은 지난달 27일 공개한 지 나흘 만에 2000조회 수를 넘겼다.
왜 유튜브 출연을 결심했느냐 물으니 “직원들과 함께 대사관 활동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아직 많은 영상을 올리진 못했지만 임기 동안엔 꾸준히 할 것”이라고 답했다. 크루아상을 와플 팬에 구운 ‘크로플’을 맛보는 영상도 있다. “맛이 어땠냐”고 묻자 “정말 맛있었다. 미국이나 호주에도 크로플이 있다는데, 확인해보니 크로플은 한국 음식이 확실하다”며 웃었다. “태권도를 잘하더라”고 칭찬하자 “14세 아들과 함께 시작했는데, 최근에 주황띠를 땄다”고 자랑했다.
“유럽⋅프랑스에 비해 한국은 코로나 방역을 잘했기 때문에 국내 활동엔 제약이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해외 교류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다소 있었습니다.” 르포르 대사는 코로나 사태로 계획만큼 많은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 대신 보완책을 찾아 나섰다. “가상 베르사유궁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싱가포르에서 굉장히 큰 인기를 끌었는데, 한국에도 소개해 드릴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서로 오가지는 못해도 이런 기술들을 통해 문화 교류를 지속할 수 있죠.”
남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을 묻자 “한국과 프랑스가 에너지 정책에서 더 많이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핵폐기물 재처리에 관한 협력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는 핵폐기물 재처리 기술을 40년 전부터 보유하고 있는데, 한국이 앞으로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수립하든 간에 협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광 교류가 코로나 이전처럼 활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인천에 갔을 때 제 고향 몽생미셸이 생각났어요. 동해 바다는 맑고 아름답죠. 프랑스에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곳이 많아요. 서로 이런 곳들을 방문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