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콩쿠르 우승자와 결선 진출자의 숫자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이미 미국·러시아도 추월했다.”
벨기에의 티에리 로로(Loreau·63)는 한국 클래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만 2편을 연출한 감독이다. 벨기에 공영방송인 RTBF 소속으로 흔히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현장 중계를 25년째 맡고 있다.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초청작인 ‘K클래식 제너레이션’ 상영을 위해 방한한 그를 9일 만났다. 로로는 임지영(바이올린), 조성진·문지영(피아노), 황수미(소프라노) 등 최근 국제 콩쿠르 우승자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한국 연주자들이 산사태처럼 몰려오는 건 세계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현상”이라고 했다.
로로는 브뤼셀 음악원에서 오보에와 음악학을 전공한 전문 연주자 출신이다. 콘서트 현장 중계만 1000차례 맡았고, 투츠 틸레만(하모니카) 등 세계적 음악인에 대한 다큐 40여 편을 연출했다. 그가 한국 음악계의 급부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0년 무렵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만 매년 너덧명씩 진출하는 저력을 지켜보면서 호기심이 증폭됐다.
그때부터 한국 음악가들을 만나고 브뤼셀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16차례 한국을 찾았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2012년 다큐인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다. 이 다큐를 관람한 벨기에의 마틸드 왕비는 2년 전 방한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방문해 김남윤(바이올린) 명예교수의 레슨을 참관한 뒤 김 교수의 손을 꼭 붙잡기도 했다 그는 “첫 번째 다큐 이후에도 한국 연주자들은 거의 모든 세계 콩쿠르에서 폭풍처럼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면서 “이들이야말로 K클래식의 새로운 세대(new generation)이자 물결(new wave)”이라고 했다.
그는 K클래식 돌풍의 비결로 눈부신 경제성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같은 영재교육 시스템, 부모들의 헌신적 지원 등 세 가지를 꼽았다. 로로는 “철저하게 개인 역량에 맡기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온 가족이 음악을 전공하는 아이의 성공을 위해 매달리는 ‘패밀리 프로젝트(family project)’에 가깝다”면서 “가족들의 희생이야말로 유럽에선 찾기 어려운 한국적 풍경”이라고 했다. 이번 다큐에서도 임지영·황수미 등 한국 음악가들의 부모들이 인터뷰 도중 딸의 우승을 떠올리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그대로 담겼다.
그는 한국 클래식의 눈부신 약진 이면에 존재하는 순위 경쟁의 성적 지상주의에 대한 뼈아픈 지적도 잊지 않았다. 로로는 “다채로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표출해야 하는 나이 어린 연주자들이 하루 8~9시간씩 연습에만 매달리고 성패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모습에 안쓰러운 적도 적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한국 클래식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