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야?” “곰이잖아. 귀엽다!”
우리나라 하늘길 관문인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높이 6미터짜리 곰이 떴다. 공항 내 오가는 사람이 가장 많은 길목에서 눈⋅코⋅입 대신 영문 ‘VISIT’(방문하세요)를 얼굴에 새기고선 여행객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두 팔 벌렸다. 키 180㎝ 이상 성인 남성이 옆구리에 달라붙어도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보일 만큼 집채만 한 크기다.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무심히 지나치던 이들이 곰을 보곤 활짝 웃으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문화재청·한국문화재재단이 팝아트 작가 임지빈(37)과 손잡고 지난 10일 공항에 설치한 이 곰의 명칭은 곰(bear)과 풍선(balloon)의 합성어인 베어벌룬이다. 22일까지 인천공항에서 손님을 맞는 베어벌룬은 오는 9~11월 가을 시즌엔 2021년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의 하나로 국내 문화유산 4곳을 찾아가 관람객들을 반길 예정이다. 깜찍한 베어벌룬이 나타나 긴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문화유산에 대해 신선한 느낌을 전달한다는 전략인데 구체적 장소와 일정은 “아직 비밀”이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임씨는 “짧은 순간 가벼운 일상의 공간을 ‘순간 미술관’으로 만드는 게 내 오랜 꿈”이라며 “긴 비행 끝에 낯선 도시에 내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공항을 빠져나가던 이들이 베어벌룬을 보고 잠시나마 웃는 것처럼 긴 시간 버텨온 문화유산에 설치되는 베어벌룬은 관람객들에게 기분 좋은 신선함을 드릴 것”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신라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가 베어벌룬의 전신인 베어브릭(곰 모양 벽돌 장난감)에 관심 가진 건 신조어 ‘된장녀’가 열풍처럼 번진 2005년이었다. 이듬해 패션 브랜드 샤넬의 총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협업해 베어브릭에 샤넬 옷을 입혔는데, 그 경험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전까지 베어브릭은 제게 싸고 부담 없는 소재에 불과했어요. 근데 샤넬이란 브랜드와 만나고 나니 값이 어마어마하게 치솟았죠. 다 똑같은 사람인데 입는 옷, 사는 집, 모는 차 등 외적인 것에 따라 사회적 가치가 확확 달라지는 우리들과 똑 닮았잖아요.”
찰흙⋅플라스틱 등으로 빚어 딱딱하던 베어브릭이 공기 빵빵한 베어벌룬으로 변한 것도 10년 전 미술을 보는 그의 눈이 달라지면서다. 2012년 가나아트가 운영하는 레지던시에 뽑히는 등 작가들에겐 꿈의 공간인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종종 전시했지만 할수록 허한 느낌이 들었다. “열심히 준비해 전시회를 열었는데 보러 오는 사람은 미술계 관계자나 지인, 소수의 애호가가 대부분이었죠.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미술을 어려워하거나 거리감을 느끼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그가 직접 작품을 들고 일상의 공간을 찾아가기로. “길거리 그라피티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간에 베어벌룬을 놓았어요. 지나가려면 보지 않을 수 없게끔요, 하하!”
접으면 가방에 쏙 들어가는 베어벌룬은 펼쳐서 바람을 불어넣으면 건물 2~3층 높이에 달하는 조각이 된다. 그는 코로나 직전까지 캐리어에 베어벌룬과 소지품을 나눠 담고선 미국 캘리포니아와 유럽 20개 도시, 중국, 베트남 등 세계 곳곳을 다녔다. 홍콩 몽콕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천진하게 고개를 내밀거나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 좌석에 몸을 구기고 앉아있는 베어벌룬을 보면서 세계인들은 열광했다. “얘는 표정이 없어요. 베어벌룬을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하고 슬프고 외로운 자신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면서 공감할 수 있죠.” 그는 “찰나에 사라지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순전한 형태로 살아있으니 내겐 이름난 전시장보다 소중한 한때”라며 “‘딜리버리(배달) 작가’라 불려도 좋다.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