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서 중공군 포로로 끌려가 학대당한 경험을 수기로 출간했던 미군 참전용사 윌리엄 펀체스(94)가 10일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는 6·25 발발 후 미 24 보병사단 소속 중위로 참전했다. 그의 부대가 1950년 11월 평안남도 안주군 청천강 인근에 있을 때 수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던 중공군 공격을 받아 많은 동료를 잃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포로로 끌려갔다. 그는 열악한 수용소에서 강추위, 질병과 싸워야 했고, 중공군의 갖은 고문과 학대, 모욕을 버텨야 했다.

6·25전쟁 미군 참전용사 윌리엄 펀체스

펀체스는 6·25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두 달이 지난 1953년 9월에야 풀려났다. 이 때문에 ‘마지막 한국전 미군포로’로도 불렸다. 그는 전투 중 부상을 입은 군인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 훈장 등 여러 훈장을 받았다. 생환 이듬해 전역한 뒤 클램슨대학 교직원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정부 기관에서 농업 담당 공직자 등으로 일했다. 평온한 일상을 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34개월 동안 중공군 포로수용소의 극한 환경에서 학대당했던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은 ‘기록’이었다.

6·25전쟁 미군 참전용사 윌리엄 펀체스

그가 포로 생활 중 겪은 일을 쓴 수기 ‘한국 포로: 고통의 1000일(Korea P.O.W.-A Thousand Days of Torment)’이 1997년에 출간됐다.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2차 대전과 베트남전 사이에 끼어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치부됐던 6·25의 존재감을 일깨우고, 고통과 무관심에 시달리던 참전 미군들의 활약상을 조명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 해군은 2005년 이 책을 포로 체포 시 탈출법 수업 교재로 권고했다. 펀체스는 6·25 참전 미군들의 활동상을 조명하는 구술 인터뷰에 활발히 참여했다. 그는 지난해 2월 6·25 해외 참전용사들의 자취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한국 사진작가 라미 현과의 인터뷰에서 참전 당시 민간인 희생자 시신 더미 사이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구해내 지나가던 여성들에게 급하게 건넨 일화를 소개하며 “그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펀체스는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방위부에서 수여하는 ‘평화를 위한 한국 대사 메달’을 받았고, 2018년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 훈장인 팔메토 훈장을 받았다. 클램슨대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펀체스의 포로 생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시성(諡聖) 절차가 추진 중인 종군 신부 에밀 카폰(1916~1951)이다. 그는 함께 포로로 끌려갔던 카폰 신부가 수용소에서 숨질 때까지 함께 생활한 최후의 전우였다. 2013년 카폰 신부에게 미군 최고 등급 훈장인 ‘명예 훈장’이 사후 수여될 때 수훈식에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