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용사였던 존 워너 전 미(美)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25일(현지 시각)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향년 94세. 워너 전 의원의 비서실장인 수전 매길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워너 전 의원이 전날 밤 아내와 딸을 곁에 두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6·25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존 워너 전 미 공화당 상원의원이 2012년 1월 버지니아주 하원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지난 25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AP 연합뉴스

워너 전 의원은 17세 때 해군에 자원해 2차 대전에 참전했고,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해병대에 자원해 통신 장교로 복무하며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 전장에서 싸웠다. 이후 주로 해군에서 근무했고 닉슨 행정부에서 해군장관을 역임했다.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간 버지니아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을 5차례 지냈다. 상원 군사위원장을 맡는 등 ‘군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워너 전 의원은 ‘친한파' 의원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지난 1993년 6·25 참전용사의 활동을 기념하자는 의미에서 그해 7월 25일 주를 참전용사 기념 주간으로 지정하자는 내용의 합동 결의안을 발의했다. 1994년 3월에도 매년 7월 27일을 6·25 참전용사 기념일로 지정하는 합동 결의안을 발의했다. 2000년 2월에는 6·25전쟁 50주년과 참전 활동을 인정하는 합동 결의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2001년 11월엔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고 미 대통령이 이 해를 ‘한국 이민의 해’로 선포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 결의안을 냈다. 이런 활동들을 인정받아 2009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다정히 앉아있는 존 워너. /AP 연합뉴스

그는 2008년 상원 군사위 청문회 때 2012년 4월로 예정된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기와 관련해 “6·25전쟁 이후 58년이 지나도록 (전작권을) 한국군에 이양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워너 전 의원은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종종 무(無)당파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라크 전쟁을 초기엔 찬성했지만, 이후 이라크전이 전개되면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대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07년엔 미군 철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2007년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과는 달리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지구온난화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선언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에 상한을 두려는 법안을 지지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기도 했다. AP는 “워너 전 의원은 중도 성향으로 양당의 온건파로부터 지지를 받았다”며 “독립적 행보로 보수적인 공화당 지도부를 화나게 하기도 했지만, 버지니아주 유권자로부터는 큰 인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2008년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2009년 1월 임기 말에 정계를 떠났다.

워너 전 의원은 1976년 한 세기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결혼했었다. 그는 테일러의 6번째 남편이었다. 둘은 1982년 이혼했다. 테일러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워너가 상원의원 일에 몰두해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워너 전 의원도 세 번 결혼했으며, 2003년 결혼한 지니 워너가 마지막 그의 곁을 지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우리의 마음과 기도는 그의 가족과 함께한다”며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