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저에게 미술은 수우미양가 중에서 ‘미(美)’만 받는 과목이라 ‘미’술이었어요. 그런 제가 첫 책에 제 그림을 넣어 펴내게 될 줄이야….”

출판계 맏언니로 꼽히는 강맑실(65) 사계절 출판사 대표가 7남매의 막내로 자랐던 유년을 회고하는 에세이집 ‘막내의 뜰’을 펴냈다. 베테랑 편집자가 초보 저자로서 인생 2막을 연 것이다. 글뿐만이 아니라 유년기 집의 풍경과 가족 모습을 담은 40여점의 수채화를 직접 그려 함께 실었다. 지난 25일 만난 그는 “2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7년 전부터 쓰고자 했지만 나오지 않던 글이 술술 풀려나와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강 대표는 1987년 사계절 출판사에 편집자로 입사해 1995년부터 지금까지 26년째 대표를 지내고 있다. ‘논리야 놀자’ ‘마당을 나온 암탉’ ‘한국생활사박물관’ ‘어린이라는 세계’ 등 인문서와 어린이책 2000여권을 펴낸 베테랑 편집자다.

글과는 친했지만 그림과는 멀었다. 미술 과목 성적이 매번 ‘미’였고, 고교생 때는 소나무를 그렸더니 ‘쑥떡’을 그렸냐는 핀잔을 들었다. 이후 그림과 담을 쌓고 지냈다. 그렇지만 2019년부터 지인의 소개를 통해 다시 붓을 잡았다. 100일 동안 매일 다른 주제로 그림을 한 점씩 그리는 ‘잘 그리면 반칙’이라는 이름의 미술 수업을 듣게 되면서였다. “100일 코스를 완주한 건 12명 중 절 포함해 두 명뿐이었어요. 내 안에 있는 그림을 발견했지요.”

남의 글을 받아 책으로 만들던 그가 직접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부모님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다. “2008년 아버지, 201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유년의 그리움을 정리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작년에 어렸을 때 살았던 집 여덟 곳의 평면도를 그리고 집에 있던 꽃나무, 키우던 거위·돼지·염소 등을 그려넣다 보니 이야기가 생명력을 얻어 살아나고 글도 술술 쓰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수시로 학교를 옮기는 교사 아버지를 따라 집은 계속 이사를 했다. 그렇게 거쳐간 집 열 채 중 여덟 곳에서 살았던 경험을 책에 담았다. 비 맞는 염소 새끼를 구하러 뛰어가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치기도 하고, 할머니 묘에 찾아가서는 “할머니는 땅에 심었는데 (식물들처럼) 왜 안 나와”라고 천진하게 질문한다. 외롭고 슬플 때는 집 안 우물에 숨어 혼자 시간을 보낸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의 유년을 동화처럼 재구성한 이 책은 봄바람처럼 따스하다.

종종 ‘맑시스트’에서 따온 예명으로 오해받는 ‘맑실’이라는 이름은 ‘맑은 골짜기’라는 뜻을 담아 선친이 붙여준 본명이다. 하지만 이번 책에는 본명이 아닌 ‘맑음’으로 등장한다. 그는 “글 보는 독자가 자기 유년의 이야기로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강맑실’이라는 존재가 덜 드러나도록 했다”고 말했다.

50~60년 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7남매는 단체 대화방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렇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강 대표 자신의 기억. 그는 “마당에서 땅 냄새가 올라오는 단층 주택에 살았기 때문에 규격화된 아파트에서의 삶보다 기억이 더 생생한 것 같다”고 했다.

발터 베냐민은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강 대표는 “독자들도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유년을 떠올리면 좋겠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유년은 있다. 그 유년이 쓸쓸했건 달콤했건 외로웠건 고통스러웠건 유년은 찬란한 빛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도서/막내의 뜰/사계절/책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