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2020-2021시즌을 마무리한 프로당구리그(PBA-LPBA)에서 가장 빛난 스타는 이미래(25·TS)였다. 그는 지난달 13일 프로당구협회(PBA) 투어 여자부 웰컴저축은행 웰뱅챔피언십 대회 정상에 오르면서 시즌 세 대회 연속이자 리그 출범 후 총 12대회에서 4번 우승했다. 남녀 통틀어 처음 세운 기록이다. 그는 팀 리그에서도 우승하며 최우수선수(MVP) 자리를 차지했다. 최근 경기도 일산 빛마루방송센터에서 이미래를 만났다.
“어릴 때 당구가 미치도록 싫었어요. 지옥이 있다면 아마 당구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미래에게 언제부터 그렇게 당구를 좋아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큐(당구봉)를 잡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대기업 임원을 지내다 퇴직한 뒤 당구장을 운영했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6학년 딸의 예사롭지 않은 스트로크(큐를 앞뒤로 움직이는 것)를 보고 본격적으로 가르쳤다. 훈련은 혹독했다. 토·일요일도 없이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공을 쳤다. 고2 때는 ‘폐쇄성 뇌수두증’(뇌척수액이 제대로 흐르지 않아 강한 두통을 느끼는 질환) 수술을 받고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대회에 나갔다. 이미래는 “스트레스가 온몸을 휘감는 게 느껴지는 것처럼 괴로워” 아버지에게 반항도 하며 그만두려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과가 나왔다. 고1 때부터 전국체전을 포함해 각종 성인 대회 상을 휩쓸었다. 고3 때엔 국내 여자 스리쿠션 랭킹 2위에 올랐고, 당구 특기생으로 한국체대에 진학했다. 2016, 2017년 2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에게 많이 대들었어요. 그래도 성적이 나오니 ‘내가 할 건 당구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8년 팔꿈치 터널증후군이 악화해 휴학 후 재활에 전념한 게 이미래에겐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때 한번 마음껏 쉬어보기로 했어요. 아버지에게도 ‘지금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선언했죠. 아버지의 압박도, 대회 부담감도 없이 홀로 당구대 앞에 서니 당구가 달리 보였어요. 이리 쳐보고 저리 쳐보니 재밌더라고요. 당구에서 달아나기 위한 6개월이었는데, 이상하게 하루에 12시간 쳐도 즐거웠어요.”
이미래의 당구는 ‘예측 불허’로 유명하다. “예상 못할 만큼 새롭게 치는 걸 좋아해요. 주변에서도 ‘왜 그렇게 치느냐’고 물어볼 정도예요.(웃음) 남들은 몰라도 제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면 져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버지와는 사이가 어떠냐고 물었다. “나쁘진 않죠. 크고 나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결과가 좋으니 할 수 있는 말인가요?(웃음) 당구를 진정 즐기고 나니,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탄탄한 스트로크가 감사해요.”
이미래는 올 시즌 최고 활약을 펼쳤지만, 지난 5일 시즌 최종전이자 최고 상금(여자 우승 1억 5000만원)이 걸린 월드챔피언십에서는 8강전에서 조기 탈락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3차 투어부터 팀 리그까지 쉴 시간이 거의 없어 컨디션 조절이 어려웠어요. 매일 대회에 나갔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이것마저 실력이라 생각합니다. 시즌 내내 즐거워서 큰 미련은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있네요.”
당구가 미치도록 싫었다던 이미래는 이제 “평생 당구 하면서 당구 관련 직업을 갖고 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