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초대 총장을 지낸 이강숙(84) 명예교수가 2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 총장은 한국 예술계에서 유난히 ‘처음’과 ‘최초’라는 기록을 많이 지니고 있었던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 예술 행정가이자 문인이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 휴스턴대와 미시간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197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부임한 뒤 처음으로 음악 이론 전공 과정을 개설했다. ‘열린 음악의 세계’(1980) ‘음악의 방법’(1982) ‘한국 음악학’(1990) 같은 평론서를 통해 ‘음악적 모국어 찾기’를 주창, ‘한국의 첫 음악학자’로 불렸다. 1981년부터 3년간 KBS교향악단 초대 총감독을 지내며 체계적인 음악 행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피아니스트로는 1964년 국립극장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같은 악단과 한국 초연했다.

1992년 한예종 초대 총장을 맡아 10년간 재직했다. 김남윤(바이올린), 정명화(첼로), 김대진·강충모(피아노) 등을 교수로 영입해 음악원을 개원한 뒤, 연극원·영상원·무용원·미술원·전통예술원을 매년 하나씩 열었다. 음악원 출신의 피아니스트 손열음·김선욱 등이 세계 명문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한예종은 예술 교육 전문 기관으로 명성을 얻었다.

2002년 한예종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2013년까지 석좌 교수를 지냈다. 오늘날 한예종을 예술 명문으로 기억하는 건 그의 공이 적지 않다. 그는 예술 행정의 노하우에 대해서 “어느 부처에 가도 높은 사람 먼저 만나지 않고 실무진부터 만났다. 7급한테 가서 미리 인사하고, 6급한테 가고, 사무관한테 가고 ‘무조건 될 때까지 한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죽어라고 했다”고 말했다. 2001년 예순 다섯의 나이에 단편 ‘빈병 교향곡’을 발표하며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4년 첫 장편 ‘피아니스트의 탄생’, 2006년 소설집 등을 펴냈다.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음악 교육과 예술 행정에 힘쓴 공로로 2002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아내 문희자, 아들 이석재·인재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02)2072-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