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제 만행을 고발한 영문 저서를 쓴 아시아평화미래재단 박철순 부위원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정동 조선일보사에서 사진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급속한 근대화와 국가 발전은 일본의 침략을 겪은 아시아의 희생 위에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책을 썼습니다.”

정통부 공무원 출신인 박철순(54)씨는 최근 400쪽 가까운 영문 연구서를 출간했다. 찰스 박(Charles Park)이라는 이름으로 쓴 ‘불편한 역사: 아시아에 드리워진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An Inconvenient History: Japan’s Dark Shadow on Asia)’다. 최대한 감정과 편견을 배제하고,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라는 ‘그림자’와 전쟁이 끝났어도 그 그림자를 빛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역사를 깊이 고찰했다.

그는 일제 말 징용자의 아들이다. 부친 박종옥씨는 1942년 남양군도에 끌려갔다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간신히 생환했다. 박철순씨는 “일제는 멀쩡한 가정을 파괴했고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했다”고 말했다.

징용 뒤에도 가족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큰형이 병으로 죽었는데 상여도 없이 동네 청년이 지게에 널을 짊어지고 산으로 향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힘겹게 서울대에 진학했지만 생계를 위해 아파트 공사장과 컵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징용 관련 판결을 문제 삼으며 수출 규제에 들어가자 한 징용 피해자가 ‘나 때문에 경제 보복이 일어난 것 같아 괴롭다’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 징용 피해자를 지원하고 위로하는 아시아평화미래재단(가칭)을 설립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 각계 인사 120여명이 참여한 이 재단은 내년 출범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9년 전 집필을 시작했던 이번 책도 세계에 이 문제를 알리는 작업의 일환이다. “유럽 유학 때 보니 서구인들은 일본을 자기들과 비슷한 선진국이라고만 여길 뿐 일제의 잔학 행위와 아시아인들의 고통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의 판매 수익금을 일제 침략의 피해자들을 돕고 아시아 평화를 증진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