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2월 초의 어느 날, 나는 조선일보사 건물 계단에 앉아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해 소설을 한 편 써서 가지고 왔는데,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던 터였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제목은 ‘개 같은’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암울한 세상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개 같은’이라는 자조적인 욕설을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군부 독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던 만큼, 작품에 적절히 우의성을 부여하는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분히 노골적이고 단도직입적이어서,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하기에는 불리하고 또 위험했다. 결국 나는 두 번째로 염두에 두고 있던 ‘맹점’을 제목으로 적어 넣었다. 뭔가 상징적이고 예술적인 변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장련성 기자

사실 나는 당선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줄거리도 없고 뚜렷한 사건도 없이, 읽는 이들에게 그저 입심만으로 끌고나간다는 인상을 주는 소설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는 그 소설을 씀으로써 내 젊은 날의 한 장을 마감하는 작은 의식을 벌인 것이었다.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게 작가가 되었다는 통지가 날아왔고, 그 순간 나는 내 시야 속에 도사린 나 자신의 맹점과 맞닥뜨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비로소 ‘맹점’을 제목으로 정한 의미를 뒤늦게 깨달았다. 이를테면 그 시기에 우리 모두는 군부 독재라는 타율에 의해 맹점을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강박적으로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우리 모두’에는 문학인과 언론인이 뗄 수 없는 관계로 함께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과 언론은 같은 운명의 바퀴 위에 놓여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근 사십 년 동안 간간이 신춘문예 예심과 본심의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조선일보와 인연을 유지해왔다. 마음이 통하는 문화부 기자들과의 교류도 내게는 뜻깊은 일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주 문학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왔다. 어느 쪽이 다른 쪽을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다른 쪽이 가지고 있는 맹점을 이쪽의 시각으로 보완해주고, 이쪽이 가지고 있는 맹점을 다른 쪽의 시각으로 보완해서, 궁극적으로 완전한 비전을 향해 더불어 나아가는 게 아닐까 한다. 최수철·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