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기자
/말로 인스타그램

“수없이 많은 날들을/우리는 함께 지녔다/생명처럼 소중한 빛을 함께 지녔다.”

감미로운 재즈 피아노 연주 위로 대지를 흔들 것 같은 견고한 울림의 송창식과 바람 같은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목소리가 어우러진다.

지난달 15일 말로(49·본명 정수월)가 발매한 ‘송창식 송북’에 들어 있는 1983년 곡 ‘우리는’이다. 앨범 속 22곡 중 유일하게 송창식이 함께 불렀다. 송창식은 1986년 발표한 ’86 송창식’ 앨범 이후 공식적인 녹음을 한 적이 없다. 최근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만난 말로는 “송 선생님이 이번 앨범 계획을 듣자마자 흔쾌히 허락해줬다”며 “세월을 담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미완의 편곡을 완성시켜 주었다”고 말했다.

말로가 국내 대중음악을 재즈로 재해석한 건 세 번째다. 2010년엔 전통 가요를 재즈로 해석한 ‘동백 아가씨’, 2012년에는 1960∼1970년대 배호의 노래를 다시 부른 ‘말로 싱즈 배호’였다. 이번 앨범은 송창식을 재즈로 읽어낸 새로운 음악책이자, 한국 최초의 송창식 헌정 앨범이다.

“송 선생님 곡들은 가요의 전형적 작법에서 벗어난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것들이 많아, 자유로운 음악 형식인 재즈와 잘 맞았어요. 재즈는 대중음악과 달리 태생적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나 자신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장르예요. 송 선생님은 그런 재즈의 본질을 잘 알고 계셨죠.”

말로 개인적으로도 6집 ‘겨울, 그리고 봄’(2014) 이후 만 6년 만의 정규작이다. 1971년 딸 셋의 막내딸로 태어난 말로는 원래 경희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23세 우연히 카페에서 전설적인 가수 다이나 워싱턴의 노래를 들은 후 재즈에 반해 미 버클리로 재즈 유학을 떠났다. 당시 드라마 ‘사랑은 그대 품안에’에서 차인표가 색소폰을 부는 장면 때문에 국내에 재즈 바람이 불 때였다.

“호기심 많은 스타일이라 알고 싶은 건 무조건 알아내야 해요. 물리학을 전공했던 건 천문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었어요. 음악은 원래 좋아했고 귀가 좋은 편이라 듣고 나면 웬만한 코드는 다 파악해 따라 적을 수 있는데, 재즈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내 귀에 안 들리는 음악을 만나니깐 화도 나고. ‘얘를 알아내고 싶다’라는 도전 과제가 생겼죠.”

말로는 최근 ‘도망가자’라는 노래로 인기를 누리는 선우정아의 스승이기도 하다. “정아는 동아방송대에서 교편을 잡을 때 만났어요. 정아는 목소리를 다루는 기술력, 타고난 재능이 많은 창작력, 그 둘을 다 가진 친구였죠.”

말로는 8월 별세한 1세대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이 아끼는 후배이기도 했다. 고인이 만들고 평생 운영한 국내 첫 토종 재즈 클럽 ‘야누스’를 이어받아 ‘디바 야누스’라는 이름으로 꾸려가고 있다.

“재즈는 연주가 중요한 장르예요. 우리가 클래식 하면 베토벤 같은 작곡가를 떠올리지만, 재즈는 루이 암스트롱 같은 연주자잖아요. 재즈는 원작은 저 심연에 두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중요해요. 그래서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소규모 재즈 클럽이 필요한 거죠. 매일 내 삶의 일부를 보여주고,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그걸 많이 해야 재즈 뮤지션들도 실력이 유지되고 영감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최근 재즈 클럽들이 많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