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CEO까지 올라갔느냐고요? 숨 고르기와 피드백이 크게 효과를 발휘한 것 같아요.”
윤여순(65) 전 LG아트센터 대표 앞에는 늘 수식어가 붙어 있다.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자 여성 CEO.
“21세기가 됐는데, 어떻게 그룹에 여성 임원 하나 없습니까."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지시로 임원으로 발탁 승진한 윤 전 대표. “2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뒤에서 수군거렸던 ‘그룹 내 희귀종’이었던 그녀가 15년 가까이 버티며 대표이사로 승진한 이야기 등을 담아 최근 ‘우아하게 이기는 여자’라는 책을 냈다.
현재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로 일하고 있는 윤 전 대표는 “코칭 활동을 하다 보니 제가 처음 LG그룹에 입사했던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직장 생활 고민은 변한 게 거의 없었다”며 “여성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썼다”고 말했다.
연세대 도서관학과를 졸업한 윤 전 대표는 미국에서 교육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40세 나이에 부장으로 LG그룹 연수원이자 교육기관인 LG인화원에 입사했다. 합숙 위주 교육에 치중했던 당시 온라인 교육 시스템을 처음 도입했다. 직원들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통근버스 앞에서 전단을 돌리는 등 특유의 돌파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됐다.
“여성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숨을 돌렸어요. 이런 숨 고르기를 통해 나의 상황을 좀 더 객관화할 수 있었고, 대처할 여유가 생겼죠.”
윤 전 대표가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LG인화원 임원이 돼 그룹 최고 경영진이 참석하는 리더십 워크숍 진행을 맡았던 어느 날, 1차 세션이 끝나자 나이가 지긋한 한 참석자가 검지 손가락을 구부려 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여자가 아침부터 웬 목청이 그렇게 크고 높아”라며 호통쳤다. “모멸감도 느꼈고, 자존심도 엄청 상했죠. 저도 성질이 있는데, 사표를 내야 하나 순간 고민도 했고요.”
하지만 쉬는 시간에 인화원 1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숨 고르기를 했다. 그리고 2차 세션이 끝난 뒤 그에게 다가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목소리 톤을 좀 낮췄는데 괜찮으셨나요?” 심리적 안정을 찾은 윤 전 대표는 진행을 아주 잘했다며 큰 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여성의 감성은 매우 유용한 자원이지만, 여성의 감정은 때로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감정대로 반응하면 당장은 후련하지만, 더 큰 화를 부르고 연속적인 트러블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감정에 휘둘려 자신만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성 멘토도 중요하지만, 남성 멘토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도 했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주관이 강해지기 때문에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그는 “세상은 아직도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고, 세상의 벽 앞에 좌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럴 때마다 내 꿈을 나의 스타일로 이뤄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고, 그게 험난한 세상을 뚫고 나가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탤런트 윤여정씨 동생이기도 한 윤 전 대표는 책 말미에 딸만 셋 낳은 종손가 며느리였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썼다. “세상 모든 딸에게 어머니가 다 그렇듯, 서른셋에 남편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세 딸을 키우기 위해 양호 교사가 된 악착같은 어머니 삶은 제 인생 교재였어요.” 책이 출판된 직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