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이거나 가난한 나라의 굶주린 사람들을 돕는 데 앞장서온 국제기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 시각) 기아에 맞서 싸우며 분쟁 지역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WFP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2014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셰브로 섬 주민들이 세계식량계획에서 헬기로 공수한 식품을 받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WFP는 기아에 대항하고, 분쟁 지역에 평화를 위한 조건을 개선하고, 기아를 전쟁과 분쟁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공로가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위원회는 또 WFP가 “코로나에 대항하는 노력을 강화하는 인상적인 능력을 보여줬다"고 했다. 예멘·콩고민주공화국·나이지리아·남수단·부르키나파소 등 정정이 불안했던 빈곤국들이 코로나 직격탄으로 식량 사정이 더욱 악화된 상황에서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WFP의 헌신이 빛났다는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WFP의 코로나 대응 구호를 그대로 인용하며 “백신을 찾을 때까지는 이 혼돈에 맞설 최고의 백신은 식량”이라고 했다. 상금으로는 1000만크로나(약 13억원)가 주어진다.

WFP는 1961년 창립됐으며 본부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다. 잉여 농산물을 활용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의 기아 문제를 해결해, 궁극적으로 아무도 굶지 않는 ‘제로 헝거(Zero Hunger)’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80여 국가에 1만5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지낸 데이비드 비슬리(63) 사무총장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비슬리 사무총장은 노벨상 발표 직후 트위터에 영상을 올리고 “믿을 수 없다”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상을 받겠다”고 했다.

지난 1월 24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피실라 지역에서 주민들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제공한 긴급 구호 식량을 받고 있다.(오른쪽 사진) 전세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위한 인도주의 식량 구호에 앞장서온 WFP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왼쪽 사진은 데이비드 비즐리 WFP 사무총장. /로이터 연합뉴스

WFP는 세계 각국과 민간단체들이 내는 자발적 기여금을 재원으로 매년 300만~400만t의 식량을 구입해 자체 선박·자동차·비행기로 긴급 구호가 필요한 곳에 실어나른다. 직접적인 식량 구호뿐 아니라 학교 급식, 영유아와 임신부를 위한 모자 보건 영양 개선 사업, 가난한 농촌 주민들을 위한 자활 사업 등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은 WFP로부터 식량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공적으로 탈바꿈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은 1968년 WFP에 가입한 뒤 1984년까지 총 1억400만달러(약 1200억원) 규모의 지원을 WFP로부터 받았다. 이후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지원하는 나라가 됐다. 2015년 한국의 지위를 원조공여국으로 재정립하는 내용의 한국-WFP 간 기본협력협정이 체결됐다.

2011년 710만달러(약 82억원)였던 한국의 WFP 지원 규모는 지난해에 8400만달러(약 968억원)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급증한 지원 규모만큼 기구 내에서의 위상도 강화돼 각종 사업에 대한 의결권을 가진 집행이사국(총 36개국)에 세 차례 선임됐다.

WFP는 북한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식량 지원 창구이기도 하다. 1995년부터 25년 동안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식량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북한 주민들에게 WFP가 주는 긴급 구호 식량은 생명줄 역할을 했다.

우리 정부도 WFP를 통해 대북 식량 지원을 했다. 2014~2019년 WFP를 통한 정부의 대북 지원 규모는 총 1360만달러(약 157억원)에 이른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취임한 뒤 처음 결정한 대북 지원 사업도 WFP가 진행하고 있는 북한 영유아·여성 보건 지원 사업에 1000만달러(약 119억원)를 지원하기로 심의·의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