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는 고향 바다를 수채화로 그리고 딸은 그 바다를 모아 책을 엮었다. 지난달 나온 ‘통영, 아빠의 바다’는 김무근(73)씨와 딸 김재은(42)씨의 합작품. 그림의 빛깔은 말갛고 투명하고 곱다. 부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통영색’이다.
김무근씨는 화가도 미술 애호가도 아니었다. 대우그룹에서 오래 일하고 퇴직한 그는 “그림은 그려본 적도 없고 미술 시간에 좋은 점수를 받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붓을 잡게 된 데는 2007년 수술 후유증으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일이 계기가 됐다.
수년간 재활 끝에 휠체어를 탈 정도가 됐을 때 친구가 시간을 보내보라며 화구(畵具)를 건넸다. “물감이 번져가는 모양이 참 예쁘더라고요. 물감은 어떻게 칠하는지, 물은 얼마나 머금어야 되는지 유튜브를 보면서 배웠죠. 첫 그림은 통영 사진을 똑같이 그려본 거였어요.” 그는 2016년 고향으로 내려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6월 김재은씨는 그 그림 중 하나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아무 설명을 달지 않았는데도 “통영 같다”, “통영에서 본 그 풍경” 같은 댓글이 이어졌다. 새 그림을 하나씩 올리고 거기에 설명도 조금씩 붙이자 주변에서는 “딸이 아버지 그림으로 온라인 전시를 열어 드린다”고들 했다.
언론사 기자로 일했던 딸은 “대충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때부터 전화와 메신저로 아빠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 “늘 별것 아니라는 듯 말씀하시지만 그림 안에 아빠의 세월이 있어요. 고향의 맛, 어린 시절 동무들과의 추억, 아내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 그림을 통해서 통영과 아빠를 더 알게 됐죠.” 그는 “서울과 통영은 300km나 떨어져 있지만 어느 때보다도 부모님과 가까이 연결돼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책은 예상보다 빨리 초판이 소진돼 2쇄를 준비 중이다. 책을 본 통영 사람들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그동안 몰랐는데 책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는지 깨달았다” “잊고 살던 어린 시절 풍경을 그림에서 만나 반갑다”고 했다. 수필가 호원숙은 이런 독후감을 전해왔다고 한다. “통영에 대해 이토록 애정 어린 책이 있을 수 있을까요?” 채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