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갓 입학한 한 야구선수는 실력이 늘지 않아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고 의욕을 급격히 잃었다. 하도 야구를 못해 경기를 언제 터뜨릴지(망칠지) 모른다고 ‘깨쓰통’(가스통)이란 별명이 붙어도 끄떡없던 열정이 한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야구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그에게 부모님은 “네가 야구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글로 한번 써보라”고 했다.
경기 양주에서 훈련을 마치고 밤 9시 30분 지하철에 몸을 실은 그는 노트북을 펴고 잠실역에 도착하기까지 매일 1시간 동안 자판을 두드렸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매일 쓴 ‘야구 일지’가 도움이 됐다. 글 쓰는 데 몰두하다 보니 야구에 대한 열정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슬럼프도 극복할 수 있었다.
고려대 졸업반 강인규(23)는 그렇게 자전적 장편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을 완성했다. 주인공 강파치가 야구 명문 태산고에 입학한 뒤 겪는 우여곡절을 담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이란 투 스트라이크에서 타자가 헛스윙한 공을 포수가 잡지 못하고 뒤로 흘린 상황이다. 타자는 삼진이 기록되지만, 아웃되기 전 1루로 진루할 경우 살아남는다. 강인규는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삼진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1루로 뛸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 마치 인생사 같았다”고 했다.
강인규는 2016년 덕수고의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청룡기에서 최우수 선수(MVP)와 홈런상, 타점상을 휩쓴 그는 프로 대신 대학 진학을 택했다. “야구를 늦게 시작해 구력(球歷)이 짧은 만큼,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야구를 더 잘하고 싶단 생각에 올해 초 이름을 강준혁에서 강인규로 개명했다.
테니스 유소년 국가대표였던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운동을 그만뒀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을 본 뒤 ‘야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잠신중에서 야구를 시작한 강인규의 야구 인생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 같다. 6개월 만에 무릎 부상으로 유니폼을 벗었고, 부모님께 편지를 써가며 설득한 끝에 1년 유급을 하며 해체 위기였던 신월중 야구부에 다시 입단했다. 신월중 전성기를 만들어낸 그는 은사 정윤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덕수고 유니폼을 입었다.
강인규의 덕수고 시절 이야기가 소설의 주 내용이다. 1학년 때 어이없는 주루 실수로 팀을 탈락시켜 괴로웠던 일, 3학년 때 투수의 공에 맞아 고환이 파열돼 수술대에 올랐던 일, 2주 뒤 청룡기에서 피날레를 장식한 일 등을 각색을 거쳐 생생히 그려냈다. 야구부원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겪은 웃지 못할 사연에도 살을 덧붙였다.
그는 “신문 베껴 쓰기와 속독을 꾸준히 한 것이 글쓰기를 따로 배우지 않은 내가 소설을 써낼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시인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그에게 야구를 하는 조건으로 ‘속독학원에 다닐 것’과 ‘일주일에 신문 기사나 칼럼 하나를 베껴 쓸 것’을 내세웠다. 집에서 구독하던 신문이 조선일보였다. 그는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기 MVP를 받고 ‘조선일보와 내가 인연이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인규의 대학 통산 성적은 타율 0.310, OPS(출루율+장타율) 0.989. 4학년이 되고선 타율 0.413으로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꼭 프로 유니폼을 입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대학이나 중학교 때를 다루는 후속작도 쓰고 싶다”고 했다. 그의 선수 인생은 오는 21일 열리는 KBO(한국야구위원회)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또 다른 전환점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