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헌법학의 토대를 다진 원로 법학자 김철수(89)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26일 별세했다. 유족들은 이날 “지병을 앓아오던 김 명예교수가 26일 새벽 잠을 자던 중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1933년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52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해 1961년 독일 뮌헨대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1971년 서울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헌법 연구의 기초를 다져 ‘한국 헌법학의 태두’로 불렸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김문현 이화여대 로스쿨 명예교수,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양건 전 감사원장, 김효전 동아대 명예교수, 김상철 전 서울시장 등이 그의 제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그의 제자로 연을 맺었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50여 분 동안 머물며 유가족을 위로한 뒤 “고인이 강의한 헌법학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명예교수는 법대생의 헌법 교과서로 불리는 ‘헌법학 개론’을 비롯해 ‘헌법질서서론’, ‘헌법학’ 등 저서와 400편이 넘는 논문을 썼다. 유신헌법 제정 이듬해였던 1973년 펴낸 ‘헌법학개론’ 초판에서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했다가 책을 전량 몰수당하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1993년 서울대 법학지의 ‘화갑기념대담’에서 “개필을 하지 않으면 풀려날 수 없어 개필을 약속한 뒤 아주 조금만 고쳐 또 출판을 했더니 다시 교과서가 몰수되고 출판이 금지됐다. ‘유신을 찬양하는 방향으로 고쳐 서술하라’고 연락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2013년 ‘통합진보당 사태’ 때는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정당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기 때문에 정당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사법부 독립과 위헌법률심사권을 강조했다. 그런 노력이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제자인 황우여 전 부총리도 헌재 설립 후 연구부장을 지내며 헌재 정착에 힘썼다. 황 전 부총리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교수님은 수많은 제자들이 학문의 길을 걷도록 독려하셨고, 그 때문에 한국 헌법학계의 기반이 탄탄하게 닦인 것”이라며 “학계의 거목이 떠나 너무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 명예교수는 입헌주의와 법치주의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서울대 교수 퇴임 후에는 탐라대 총장과 서울대 명예교수 겸 명지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국제헌법학회 세계학회 부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성낙인 전 총장은 “고인은 한국헌법학의 세계화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며 “국회헌법개정자문위원장으로 민주화 이후 새로운 헌법 모델을 제시하는 등 평생을 대한민국 헌법을 위해 고민하다 떠나셨다”고 했다.
김 명예교수는 한국 문학계에서 ‘불꽃 같이 살다 간 천재 여성’으로 불리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 전혜린 작가와 1957년 독일 뮌헨에서 결혼했지만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서옥경씨와 자녀 정화·수진·수영·수은·상진씨, 사위 박영룡·장영철·우남희씨, 며느리 김효영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2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 (02)3779-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