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3세 때 김병기 화가. 생일에 맞춰 열린 그해 4월 개인전에서 그는 “요즘 들어 현대미술의 허위성에 반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가나아트센터

‘최고령 현역 화가’ 김병기(106) 화백이 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국내 추상미술 1세대 화가로, 지난해 12월까지도 신작을 전시하는 등 왕성히 활동했다. 생전의 화가는 “나는 백 살 넘어서도 작업하는 장거리 선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16년 평양에서 서양미술 선구자 김찬영(1889~1960)의 아들로 태어났다. 절친했던 화가 이중섭과 평양 종로보통학교 동창이었고, 부친 뒤를 이어 도쿄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김환기·유영국 등이 그와 깊은 화우(畵友)다. 졸업 후 귀국해 북조선문화예술총연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지냈으나 북한의 전체주의에 환멸을 느껴 1948년 월남했다. 월남 후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 종군화가단 부단장 등을 맡았다.

6·25전쟁이 격렬했던 1951년 피란지 부산 남포동의 한 다방에서 예술인 30여 명을 모아놓고, 공산당원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을 비판하는 글 ‘피카소와의 결별’을 낭독해 화제를 모았다. 기계처럼 묘사된 미군이 벌거벗은 우리 민중에게 총을 쏘는 피카소의 이 그림이 현실을 너무 피상적이고 부당하게 표현했다는 반발이었다. ‘이번 동란의 격랑 속에서 지칠 대로 보아온 한국에서의 학살은 당신의 <조선의 학살>과는 정반대의 학살에서 시작했다고 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은 1954년 잡지 ‘문학예술’에 실렸다.

김병기 화가가 지난해 12월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에서 선보인 최신작 '저항-동청룡'(2021).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대 미대에서 강사 제의가 와 강단에 섰고, 서울예고 설립 당시 초대 미술과장으로 일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했다. 1957년 조선일보사가 ‘반(反)국전’을 표방하며 개최한 전위적 재야 작가 전시 ‘현대작가초대미술전’ 발기 멤버로도 참여했다. 1965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자격으로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가했다가 화업 확장을 위해 미국에 정착했다. 뉴욕과 LA에서 그는 동양적 선(線)의 추상이라는 독자적 화풍을 확립해나간다. 1986년 서울 가나화랑 귀국전을 계기로 국내 화단에 복귀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회고전이 열렸다.

2019년에는 103세 나이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특별한 건강 비결이랄 게 없다던 그는 “백 살 넘은 화가가 전시 여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라며 “이 자체로 새로운 전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7년 대한민국예술원 최고령 회원으로 선출됐고, 지난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4일 12시. (02)3010-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