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늘 행복할까요? 돈이 많으면 가난에서 오는 걱정은 덜 수 있지만, 마음의 고통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석유왕’으로 불린 존 D. 록펠러(1839~1937)의 삶이 그런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부자로,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정유 회사를 세워 엄청난 부를 쌓았어요.

록펠러는 미국 뉴욕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어요. 어린 시절부터 돈을 아껴 쓰고, 수입과 지출을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해요. 그는 16세 무렵 취직을 했는데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른 나이처럼 느껴지지만, 1850년대 미국은 지금과 달랐어요. 오늘날처럼 청소년 노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도, 의무 교육 제도도 충분히 자리 잡기 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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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의 강점은 작은 것까지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였어요. 그는 회사에서 회계 보조로 일하며 거래 관리 방법을 익혔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꼼꼼한 성격은 사업을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됐죠. 하지만 스탠더드 오일이 거대한 회사로 성장하면서 사회의 시선도 차가워졌어요. 석유의 생산·가공·유통을 거의 장악한 회사라는 이유로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았어요. 그런 압박은 그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줬어요. 1890년대 초 록펠러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건강이 크게 나빠져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질 정도의 변화도 겪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단정해서 진단할 수는 없지만, ‘번아웃 증후군’으로 볼 수 있어요.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피로 때문에 무기력해지는 스트레스 상태를 가리켜요. 정식 의학적 질병명은 아니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 증후군을 ‘건강 상태에 주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업 관련 현상’으로 인정했습니다.

록펠러의 부가 쌓일수록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디에 써야 할지 결정하는 일 자체가 또 하나의 큰 압박이 됐어요. 그는 이 부담을 혼자 감당하지 않으려 했고, 재산 관리와 기부를 도울 사람들을 두기 시작했어요. 1897년, 59세 무렵에는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면서 삶의 방향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은퇴 이후 록펠러는 교육, 의학, 공중보건 등 분야에 기부를 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의 말년 모습 가운데에는 이런 장면도 있어요. 바로 길에서 만난 모르는 아이들에게 10센트짜리 동전을 건네던 습관입니다.

그의 삶은 사회적 성공이 항상 행복과 같은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록펠러의 성공은 가장 높이 올라섰던 순간이 아니라, 가장 많이 나누던 때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