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5월 1일 노동절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돼 공무원을 포함한 전 국민이 이날 쉴 수 있게 됐어요. 노동절은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모여든 노동자들과 관련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농촌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계절에 따라 일하고 휴식하는 시기가 자연스럽게 나뉘었어요.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엔 풀을 베고, 가을에는 수확을 하면서 집중적으로 일을 했죠. 일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는 기분 전환 삼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놀이를 즐겼고, 겨울철 농한기에는 휴식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공장이 돌아가면서 노동의 성격이 달라졌어요.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와 함께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계절의 순환이 무의미해졌죠.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는 19세기에는 일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법으로 보장해 달라는 요구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미술의 주제도 달라졌습니다. 우아한 여신이나 역사 속 영웅을 그려 오던 화가들이 눈을 돌려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 거예요. 19세기 화가들이 어떤 시선으로 노동자들을 바라봤는지 살펴볼까요?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1849년 작품 '돌 깨는 사람들'. 이 그림은 독일 드레스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1945년 전쟁 때 폭격을 당해 소실됐어요. /위키피디아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

작품 ①은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가 그린 ‘돌 깨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허리를 굽혀 망치를 내리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돌덩이를 담은 무거운 바구니를 들어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둘 다 낡아 찢어진 옷을 입고 있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추정할 수 있어요. 돌을 깨어 나르는 것은 당시 남자가 하는 일 중 가장 험하고 힘겨울 뿐 아니라, 얼마 벌지도 못해 하찮게 여겨지는 하층민의 일이었습니다. 묵묵히 일하는 두 주인공은 고개를 돌리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네요. 먹고살기 위해 그저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뿐이죠. 반복적인 작업으로 몸은 점점 지쳐만 갈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네요.

영국 화가 리처드 레드그레이브의 '바느질 여공'. 1846년 작품입니다. /미국 포브스 갤러리

작품 ②는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리처드 레드그레이브(1804~1888)가 그린 ‘바느질 여공’입니다. 일감으로 가져온 바느질을 하는 여인이 피곤한지 잠시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밤에는 집에서 손바느질로 단추 등을 붙이느라, 하루 종일 거의 쉬지 못하고 일했던 당시 가난한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에요. 오른쪽 구석의 벽시계는 새벽 2시 30분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이 잠시라도 눈을 붙였으면 좋겠다는 연민의 심정으로 그림을 보게 될 거예요. 옷을 입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존재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됐을 겁니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르 드가의 1873년 작품 '뉴올리언스 면화 사무실'. /프랑스 포 미술관

19세기 사무실 풍경

작품 ③은 프랑스의 에드가르 드가(1834~1917)가 그린 어느 사무실 풍경으로 제목이 ‘뉴올리언스 면화 사무실’입니다. 이 방에는 흙먼지도 날리지 않고 몸을 쓰느라 땀 흘리는 인물도 없어요. 대신 말끔하게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고 있네요. 어떤 사람은 손끝으로 솜을 만져보며 품질을 가늠하고, 또 다른 사람은 신문에 나온 면화 가격 정보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오른쪽에는 책상 앞에 서서 거래나 계약과 관련한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도 보여요.

이곳에서는 직원들이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고 문서를 작성하며, 회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지요. 오늘날 사무실은 이 그림에서 컴퓨터와 전화기 등 사무기기만 추가됐을 뿐 드가의 그림에 보이는 19세기 후반의 사무실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는 않았답니다.

영국 화가 포드 매독스 브라운이 1854년 완성한 '노동'. 브라운은 이 작품을 12년 동안 그렸어요. /영국 맨체스터 미술관

노동자가 중심이 된 산업 사회

작품 ④는 영국의 포드 매독스 브라운(1821~1893)이 12년 넘게 신중하고 세심하게 제작한 ‘노동’이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그의 노동 철학이 담긴 그림이라고 할 수 있죠. 도시 한복판이 반원형 화면에 펼쳐졌는데, 삽을 들고 흙을 퍼 올리는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도로를 파헤치는 건설 노동자들이에요. 팔뚝에 핏줄과 근육을 드러내 보이며 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의 머리 위에는 마치 무대 위 주인공에게 조명을 쏘듯 햇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요.

이와 대조적으로 그늘이 드리워진 화면의 상단에는 모자를 쓰고 정장을 차려입은 상류층 남성의 모습이 보여요.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신사는 이 그림에서 중심 역할을 맡지 못하고 주변부로 밀려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주변에는 일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도 그려져 있어요. 왼편 귀퉁이를 보면 누더기를 걸친 걸인이 부끄러운 듯 눈치를 슬슬 보며 지나가요. 일하지 않고 구걸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떳떳하게 산업 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노동자, 신사, 걸인 외에도 이 그림에는 중산층 여성과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는 하층민 여성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 화면 안에 등장해요. 산업 사회에서 노동은 더 이상 개인의 고된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