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설 지음 l 출판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l 가격 1만3000원
‘춘향전’은 한 가지 책이 아닙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른 수많은 ‘춘향전’이 전해집니다. 누가 언제 썼는지도 잘 모릅니다. 옛 소설 대부분이 그렇답니다. 소리꾼과 광대들이 노래로 부르다가 나중에 글로 엮은 책이 나왔지요. 하지만 이야기의 전체적인 틀은 같습니다. 춘향과 이도령이 만나 사랑하다가 헤어집니다. 새로 온 사또가 춘향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요구하지만, 춘향은 거부하고 옥에 갇힙니다.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와서 춘향을 구합니다.
‘춘향전’은 신분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혼인하자는 양반 이도령에게 기생의 딸 춘향이 말합니다. “저는 신분이 낮지만 남의 첩으로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사오니, 도련님 분부를 따르지 못할소이다.” 훗날 이도령이 양반가의 정식 부인을 맞게 되면 자신은 첩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여겨 거절한 것입니다. 이도령이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글로 적어준 뒤에야 춘향은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당시 기생은 고을 사또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이도령과 혼인하기로 한 춘향은 이를 거부합니다. “1만 번 죽어도 이는 받들지 못하겠소이다.” 사또는 그런 춘향을 몽둥이로 치게 하고 옥에 가둬버립니다. 춘향이 울부짖습니다. “우리 도련님 한 번 보고 죽으면 한이 없으련만 이같이 몸이 다 망가져 죽기에 이르니 이런 극통한 일이 또 있는가.”
춘향은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식 부인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또 권력자의 강압에 굴하지 않고 목숨까지 걸어가며 사랑을 지키려 했습니다. ‘춘향전’은 천민·기생·여성이 부당함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이런 목소리가 작품의 중심이 되는 조선 시대 소설은 ‘춘향전’ 말고는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차별과 억압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면서도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춘향을 응원하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춘향전’처럼 노래에서 비롯된 소설은 줄거리를 이미 알더라도, 등장인물의 감정을 느끼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가사를 알고 있는 노래라도 부를 때마다 감정에 빠져드는 것과 비슷하지요.
이도령은 집안 사정으로 한양에 올라가 과거에 급제한 뒤 암행어사가 됩니다. 암행어사는 신분을 숨기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거지 행색으로 변장한 채 춘향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사또를 벌줄 때, 독자들은 통쾌함을 느낍니다. 춘향이 이도령과 다시 만난 기쁨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서방님이 엊그제까지 걸인으로 다니다가 오늘 암행어사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며, 내가 옥중에서 고생하다가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얼씨구 좋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구나. 기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