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에 ‘블랙홀’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쌍둥이 자매가 고속도로 옆에 핀 하얀 꽃 군락이 이팝나무꽃인지 조팝나무꽃인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다 내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고속도로 옆으로 하얀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나는 자동차 창문을 내렸다. 향긋한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아무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는 그 꽃이 이팝나무꽃이라고 했다. 나는 조팝나무꽃이라고 했다. “내기 할까?” (중략) 우리는 확실해질 때까지 당분간 고속도로 옆에 핀 흰 꽃을 이조팝나무꽃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이름이 비슷한 데다 둘 다 흰색 꽃이 피어 많은 사람이 혼동하는 나무입니다. 둘 다 꽃이 예뻐서 산에서는 물론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팝나무는 키가 큰 교목이고, 조팝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이라는 것입니다. 교목은 보통 5~6m 이상의 나무, 관목은 2m 이내의 나무를 가리킵니다. 두 나무는 자생하는 나무지만 조팝나무는 산울타리 또는 화단용으로, 이팝나무는 도심 가로수로도 많이 심습니다.
조팝나무는 요즘 한창입니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인데, 흰색의 작은 꽃이 다닥다닥 피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흰 구름이나 솜덩이처럼 생겼습니다. 봄에 시골길을 가다 보면 산기슭은 물론 밭둑에도 무더기로 피어 있고 낮은 담장이나 울타리를 따라 심어 놓기도 합니다. 풍성한 꽃이 보기 좋아 공원에 조경용으로 심어 놓은 것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바람이 불 때 함께 오는 꽃향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상쾌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팝나무꽃이 피는 것을 보고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짐작했다고 합니다. 꽃이 풍성하게 피면 풍년, 드문드문 피면 흉년이 든다고 점쳤다는 것입니다. 이팝나무는 서울시가 2000년대 초반 청계천을 복원할 때 가로수로 선택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팝나무는 개화 기간도 긴 편이고 봄꽃이 지는 초여름에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근래 이팝나무를 많이 심다 보니 서울 시내는 물론 전국적으로 이팝나무 가로수길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럼 윤성희 단편 ‘블랙홀’에 나오는 하얀 꽃 군락은 어떤 나무일까요? 조팝나무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조팝나무 군락이 피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팝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흔히 자랍니다.
이팝나무 꽃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꽃이 피었을 때 가까이 가 보면 이팝나무꽃은 꼭 이밥(쌀밥)을 얹어 놓은 모양입니다. 이팝나무라는 이름도 거기서 나온 것이죠. 조팝나무라는 이름은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박힌 것이 좁쌀로 지은 조밥 같다고 붙였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옛사람들은 이팝나무꽃에서나 조팝나무꽃에서나 밥을 연상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