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에 태어난 아기의 수가 작년 같은 달보다 2817명 늘어났습니다. 최근 7년 간 1월 출생아 수 중 가장 많아요. 혼인이 늘고 30대 여성들의 출산이 큰 폭으로 늘면서, 한국의 출산율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산부인과를 찾는 임산부들도 늘었다고 해요. 오늘은 산부인과의 기원을 알아봅시다.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혼자서 아기를 낳기가 어렵습니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은 네 발로 걷는 동물보다 골반이 좁아, 아기가 빠져나오는 길인 ‘산도’도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두뇌가 커서 엄마의 산도에 비해 아기가 큰 두개골을 갖고 태어나죠.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엄마의 골반에 아기의 머리가 끼거나 어깨가 걸리면 아기와 엄마 둘 다 위험해지죠. 그래서 출산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성모 마리아의 탄생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가 산파에게 아기를 건네고 있고, 나머지 두 여성은 아기를 씻길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영국 내셔널 갤러리

역사적으로 꽤 오랫동안 출산은 여성들끼리 이뤄졌답니다. 출산을 돕는 ‘산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이 맡았어요. 우리나라는 가족 중 출산 경험이 있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출산을 도왔죠. 마을에 산파 경험이 많은 어른이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도 산파는 여성이 담당했어요. 이들은 경험과 실습을 통해 일을 배웠기 때문에 관련 자격 등은 없었습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 의사 면허가 생기면서 출산도 의학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유명한 의사들이 왕실이나 귀족의 출산을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가 출산을 봐주는 일은 중산층으로 점차 확산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료의 한 분야로 산부인과가 개설됐지만, 놀랍게도 초기 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한 산모의 사망률은 산파 출산의 약 10~20배였다고 해요. 19세기 헝가리 출신 산부인과 의사인 이그나스 제멜바이스는 이 점에 의문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어요. 당시 의과 수련생이 있는 병동에서는 산모 사망률이 10%였는데, 산파들이 출산을 돕는 경우에는 사망률이 4%에 불과했거든요.

산모들이 사망한 이유는 대부분 ‘산욕열’ 때문이었답니다. 산욕열이란 분만 과정에서 생긴 상처에 세균 감염이 일어나 고열이 나는 질환인데, 심할 경우 패혈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제멜바이스는 의대생들이 해부 실습을 하지 않는 방학 기간에 산부인과 병동에서 산모 사망률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부패한 시신을 다루다가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도운 의사들이 산욕열의 주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그 후 제멜바이스는 시신 해부에 참여한 의사들이 산부인과 병동에 출입하려면 손을 소독하도록 했어요. 그 결과 1846년 18%였던 산모 사망률이 1년 만에 1~2%로 감소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