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봄은 축제와 함께 시작되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봄 음악 축제인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오는 21일 개막해서 다음 달 3일까지 열립니다.

실내악은 영어로 ‘체임버 뮤직(chamber music)’입니다. ’체임버(chamber)‘는 ‘방’이란 뜻이에요. 귀족의 궁전에 딸린 작은 방이나 응접실에 모여서 연주하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그러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고전주의 시대부터는 한 악기가 소프라노·알토 등 한 성부씩 맡아 연주하는 것을 실내악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지금은 보통 2중주부터 9중주까지를 모두 실내악이라고 부르는데요. 오늘은 세 사람, 세 대의 악기로 구성된 3중주(트리오)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피아노 3중주에 대해 알아볼게요.

프로이센(독일의 전신)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플루트를 연주하고, 프란티셰크 벤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가 건반 악기로 반주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입니다.

오케스트라에 견주는 피아노 3중주

3중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줄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현악기인 바이올린·비올라·첼로로 구성되면 ‘현악 3중주’라고 부릅니다. 바이올린·첼로·피아노가 모이면 피아노가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피아노 3중주’가 됩니다. 피아노의 넓은 음역대와 풍부한 표현력 덕분에 피아노 3중주를 오케스트라에 견주기도 해요.

피아노 3중주에서 현악기(바이올린·첼로) 하나를 빼고, 그 자리에 입으로 관을 불어서 소리를 내는 관악기를 넣으면 관악기가 주인공인 3중주가 완성되죠. 예를 들면 클라리넷 3중주, 호른 3중주, 플루트 3중주 등이 있어요. 드물게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 등 목관악기 셋만 모인 목관 3중주도 있습니다.

1815년 그린 베토벤의 초상화예요.

베토벤이 발전시킨 피아노 3중주

3중주의 뿌리는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바로크 시대의 ‘트리오 소나타’입니다. 트리오 소나타는 바로크 시대 기악 음악의 중심에 있는 장르였죠. 바이올린과 플루트처럼 고음을 내는 악기가 둘 들어가고, 여기에 화음을 넣는 역할을 하는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나 오르간, 저음을 강화하는 첼로나 바순 같은 악기 중 하나가 추가되는 구성입니다. 저음 악기의 경우, 때에 따라 둘 이상 쓰일 때도 있었죠. 그래서 이름에는 ‘트리오’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실제 연주자는 네 명을 넘어갈 때도 있었어요.

피아노 3중주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실내악 편성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그 시작은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아마추어 연주자가 피아노 소나타를 칠 때 연주를 돕기 위해 오른손의 선율은 바이올린이, 왼손의 선율은 첼로가 따라가며 연주를 뒷받침해 주던 것에서 시작됐지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3중주가 이런 식인데요. 하이든은 40곡이 넘는 피아노 3중주를 작곡했고, 모차르트는 6곡 정도를 완성했어요.

그런데 베토벤은 여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고향인 독일을 떠나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온 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서 빈 청중에게 명함처럼 내민 첫 작품이 바로 피아노 3중주 작품이었죠. ‘피아노 3중주 1번, 2번, 3번’이 작품 번호 1번을 달고 악보로 정식 출판된 겁니다. 그것도 교향곡처럼 격식을 갖춘 네 악장으로 구성됐고, 하이든과 모차르트 작품보다 정교하고 어려워졌죠. 피아노 3중주 5번 ‘유령’, 피아노 3중주 7번 ‘대공’ 같은 피아노 3중주 대표곡이 탄생했고, 베토벤이 이를 직접 연주도 했습니다. 이후 점차 피아노 3중주는 전문 연주자를 위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1년 '정트리오'가 어머니 이원숙씨를 추모하며 연 콘서트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1980년 보자르 트리오. 왼쪽부터 메나헴 프레슬러, 이시도르 코헨, 버나드 그린하우스.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시도르 코헨은 대니얼 길레 은퇴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보자르 트리오에서 바이올린을 맡았습니다. /위키피디아•조선일보 DB

유명한 피아노 3중주곡과 연주자들

오스트리아 출신인 슈베르트는 생애 마지막 해이던 1828년 ‘피아노 3중주 2번’을 처음 공연했습니다. 전체 네 악장 중 느린 둘째 악장이 가장 유명한데, 피아노의 스타카토 반주 위에 흐르는 첼로의 음울한 선율은 영화와 광고에 자주 쓰여서 우리에게도 익숙하죠.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은 두 곡의 피아노 3중주를 썼습니다. 그중 서른 살에 작곡한 ‘피아노 3중주 1번’을 두고 작곡가 슈만은 “베토벤 이후 최고의 3중주”라고 극찬했습니다. 6년 뒤에 작곡한 ‘피아노 3중주 2번’과 함께 두 곡 모두 지금까지 자주 연주되고 있어요.

훌륭한 연주자들이 모여 피아노 3중주 팀을 이루고 청중에게 황홀한 연주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첼리스트 요요마로 이뤄진 ‘액스-김-마 트리오’는 1980년대 클래식계 슈퍼스타들의 모임이었죠. 그보다 앞선 20세기 전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가 결성한 피아노 3중주단은, 당대 최고의 연주료를 받을 정도로 탁월한 연주자들의 모임이란 의미로 ‘백만불 트리오’로 불렸습니다. 올해 부임한 KBS 교향악단 음악 감독인 지휘자 정명훈은 젊은 시절, 두 누나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 ‘정트리오’를 꾸려 활동했어요.

가장 오랜 시간 연주한 팀을 꼽는다면, ‘보자르 트리오’입니다. 1955년, 미국의 탱글우드 여름 축제에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 길레, 첼리스트 버나드 그린하우스,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의 모임으로 시작됐어요. 공연 요청이 쏟아졌고, 금세 미국 전역과 영국을 비롯한 세계 무대에 오르며 주요 피아노 3중주곡 대부분을 녹음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실내악의 교과서로 꼽히는 명반들이에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현악기 연주자 두 사람이 먼저 은퇴하고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는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요. 앞서 소개한 ‘액스-김-마 트리오’의 멤버였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보자르 트리오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