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을 백악관 경내에 세웠어요. 콜럼버스는 지금 미국이 있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인물이에요.

이 동상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지난 2020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파괴해 바다에 던진 동상의 복제품이랍니다. 이 시위대는 왜 콜럼버스 동상을 파괴했을까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 식민지화와 원주민 노예화의 시작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입장을 지지하기 때문에 새 동상을 세운 거죠.

오늘은 콜럼버스를 비롯해 한때 위인으로 여겨져 동상까지 세워졌지만, 이후 부정적 평가가 나오면서 논란이 된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 경내에 설치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입니다. /AP 연합뉴스
1492년 10월 12일 산살바도르에 도착한 콜럼버스 일행의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가장 큰 깃발을 들고 있는 인물이 콜럼버스예요. 미국 화가 존 밴더린의 작품입니다.

콜럼버스의 날? 원주민의 날?

먼저 위에서 언급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에 대해 소개할게요. 15세기 유럽에서는 인도의 향신료가 인기였어요. 탐험가들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가는 바닷길로 인도로 가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콜럼버스가 유럽 서쪽 대서양을 가로질러 인도로 가보겠다는 새로운 발상을 합니다.

콜럼버스는 자신을 후원해 줄 국가를 찾아 나섰고, 새로운 항로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던 에스파냐(스페인)가 콜럼버스를 후원했어요. 1492년 8월 3일 배 3척을 이끌고 출항한 콜럼버스는 약 두 달 뒤인 10월 12일 현재 북아메리카에 속한 바하마의 한 섬에 도착해 그곳을 에스파냐 땅이라고 선언했어요. 섬에 ‘성스러운 구세주’라는 뜻의 ‘산살바도르’라는 이름도 붙였죠.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도라고 믿었어요. 콜럼버스는 원주민 약 500명을 노예로 삼아 에스파냐로 돌아가는 배에 태우기도 했습니다. 약 200명은 항해 도중 사망했고, 나머지는 에스파냐에 도착해 경매에 부쳤어요.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유럽 여러 국가가 아메리카로 건너가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했어요. 이후 북아메리카에 있는 영국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미국이 탄생했죠. 미국에서는 18~19세기쯤부터 콜럼버스가 산살바도르섬에 도착한 ‘콜럼버스의 날(10월 12일)’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70년대부터는 10월 둘째 주 월요일로 정했죠.

하지만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정착 과정에서 원주민을 착취하거나 학살했으며, 이로 인해 원주민 문명이 일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의 날’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2021년에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이 콜럼버스의 날을 동시에 원주민의 날로도 기념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이날을 다시 콜럼버스의 날로 지정하면서 콜럼버스 관련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에요.

영국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제임스 쿡의 초상화입니다.

세계 지도 완성한 탐험가, 호주 원주민에게도 영웅일까

호주 대륙을 발견한 영국의 제임스 쿡(1728~1779)을 둘러싸고도 평가가 갈립니다. 당시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세워 세력을 키우고 있었는데, 또 다른 대륙을 발견한다면 영국의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당시 유능한 군인이자 뛰어난 항해가였던 제임스 쿡 해군 대위를 지휘관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1768년 8월 쿡을 비롯해 약 100명이 탄 인데버호가 플리머스 항을 출발했어요. 1769년 10월 뉴질랜드에 도착한 쿡은 약 6개월 정도 머물며 뉴질랜드 전도를 만들었죠. 이후 쿡은 항로를 틀어 호주에 도착했고, 마침내 호주 동부 해안 지역을 영국령 ‘뉴사우스웨일스’라고 선언했어요. 이 탐사 이후 호주는 영국 죄수들의 유배지가 되면서 영국인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제임스 쿡은 영웅과도 같아요. 그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계 지도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고 있어요. 대서양·인도양·태평양·북극해·남극해 등 해역을 모두 탐사했습니다. 쿡의 이름은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 사이 ‘쿡 해협’, 호주 퀸즐랜드 북동부의 ‘쿡 타운’, 뉴질랜드 남섬의 ‘쿡 산’ 등에 붙어 여전히 기억되고 있어요.

하지만 쿡의 호주·뉴질랜드 발견은 반대로 마오리족 등 그곳 현지 원주민에게 침략과 학살의 역사가 시작되는 끔찍한 사건이었죠. 2019년에는 뉴질랜드에서 열린 쿡의 뉴질랜드 도착 250주년 기념 행사에서 마오리족이 모형 인데버호 입항을 거부하며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이후에도 호주와 뉴질랜드 곳곳에 세워진 그의 동상은 페인트칠을 당하거나 발목 부분이 잘리는 등의 수난을 겪었습니다.

1890년 촬영한 세실 로즈 사진이에요. /위키피디아

아프리카 착취한 영국의 광산 재벌

세 번째 인물은 영국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세실 로즈(1853~1902)예요. 19세기 유럽 각국에선 값싼 노동력과 원료를 찾아 아프리카로 진출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이 등장했는데, 세실 로즈도 그중 한 사람이었어요.

1870년대 남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금 채굴을 하며 자산가로 성장한 세실 로즈는 광산 회사를 설립해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킴벌리에 있는 다이아몬드 광산 대부분을 독점했어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평등·허위 계약으로 원주민의 땅을 헐값에 빌리거나 마구 사들였죠. 광산 재벌이 된 그는 이렇게 얻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국 본국의 정계에 진출했고 마침내 1890년 영국의 남아프리카 케이프 식민지 총리 자리까지 오르게 됐습니다.

총리가 된 그는 다이아몬드·금을 찾아 더 북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현재 아프리카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등 국가가 위치한 곳이죠. 로즈는 1894년 이 지역에서 영국 본토 면적의 4.5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토지를 점령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로디지아’라고 불렀어요.

그는 영국인들에겐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의 영웅으로 평가받아요. 로즈의 유언에 따라, 1902년 설립한 로즈장학재단은 미국·독일·영국 등에서 뛰어난 학생을 선발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무료로 공부할 기회도 주고 있죠. 하지만 반대로 아프리카 원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로즈는 자신들을 착취한 인물인 거죠. 한때 남아공 케이프타운대학교에 세실 로즈 동상이 있었지만 학생들 반대로 2015년 철거됐어요. 옥스퍼드대에 있는 동상 또한 계속 철거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