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예술대상이 올해부터 뮤지컬 부문을 추가한다고 해요. 기존에는 방송·영화·연극 3개 부문만 시상했습니다. 음악·노래·춤을 결합한 무대 작품인 뮤지컬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오늘은 뮤지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뮤지컬이 있기 전, 유럽에는 오페라가 존재했어요. 오페라는 노래로 대사를 표현하는 연극인데요. 이탈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했죠. 19세기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는 오페라를 줄거리 등 연극적 요소를 강화한 음악극 형태로 재편했어요. 오페라 관중이 성악가에게만 관심을 쏟아서, 성악가들 사이 과도한 아리아(반주에 맞춰 부르는 독창·이중창) 경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오페라가 아리아 중심이라면, 음악극에서는 합창도 아리아 못지않게 중시됐어요.

국내 창작 뮤지컬인 ‘명성황후’ 공연 모습이에요. /뉴시스

음악극이 유럽 대륙에서 영국을 거쳐 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다양한 대중 공연 예술과 결합했어요.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탄생했죠. 줄거리는 더 단순해지고 오락적 요소는 늘어났으며, 춤까지 더해졌는데요. 이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대중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갈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처럼 뮤지컬은 영국·미국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지금도 세계 뮤지컬의 양대 산맥은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노래·곡예 등 여러 가지를 섞은 공연인 ‘버라이어티 쇼’나 백인이 흑인 분장을 하고 나오는 공연인 ‘민스트럴 쇼’ 등과 합쳐져 더욱 유쾌한 내용의 뮤지컬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최초의 미국 뮤지컬인 ‘쇼보트’도 민스트럴 쇼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받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뮤지컬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리오 리타’가 대표적이에요. 오늘날에도 ‘레미제라블’ ‘시카고’ ‘위키드’ 등 뮤지컬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많습니다.

뮤지컬은 1950년대까지 ‘대중문화의 모든 것’이라 불릴 정도로 흥행했지만, TV와 록 음악이 유행하던 1960~1970년대에는 잠시 침체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다시 성장하면서 지금의 인기를 누리게 됐죠.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은 1966년 예그린악단이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살짜기 옵서예’입니다. 예그린악단과 그 후신인 국립가무단(현 서울시뮤지컬단)이 중심이 돼서 한국 뮤지컬 발전을 이끌었어요. 1980년대 이후에는 ‘아가씨와 건달들’, ‘명성황후’ 등 국내 창작 뮤지컬도 많이 등장했어요. 2001년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한국 뮤지컬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는 평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