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지음 l 김순배 옮김 l 출판사 아르테 l 가격 1만6000원

문학사에서 오스카 와일드만큼 화려한 수식어가 따르는 작가는 드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는 “그처럼 완벽한 문장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지요. 뛰어난 문장력으로 수많은 희곡과 동화, 에세이를 쏟아내며 문단을 휩쓴 그가 남긴 장편소설은 놀랍게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단 한 편뿐입니다.

이 소설은 영원한 젊음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내용입니다. 화가 배질이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완성하면서 시작되는데요. 그림을 본 도리언은 절망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림 속 모습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데, 자신은 점차 늙고 쇠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는 차라리 그림 속 모습이 대신 늙어가고 자신은 젊음을 간직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내주겠다는 소원을 비는데요. 이 소원은 놀랍게도 현실이 됩니다.

도리언이 자신의 소원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첫사랑 시빌 베인과 결별한 날이었어요. 배우였던 그녀에게 연기가 형편없다며 모욕하고 돌아온 밤, 완벽했던 초상화 입가에 어딘가 잔혹한 느낌이 생긴 것을 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자신의 죄가 그림에 새겨진 것이죠. 이를 알아챈 그는 초상화를 다락방 깊숙이 숨깁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숱한 악행을 저질러도 도리언은 여전히 천사 같은 모습입니다. 반면 다락방의 초상화는 도리언 대신 죄의 흔적을 떠안고 점점 일그러진 얼굴로 변하죠. 나중에 배질이 이 비밀을 알게 되자, 도리언은 배질을 잔인하게 살해합니다.

소설의 마지막, 도리언은 더 이상 자기 초상화를 견디지 못합니다. 감춰온 모든 죄의 기록이자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진짜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림을 없애려 칼을 치켜들고 초상화를 파괴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초상화 속 모습은 다시 아름다워지고 늙고 일그러진 도리언이 방 안에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어떤 사람의 겉모습과 내면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도리언의 천사 같은 얼굴에 속아 그를 쉽게 믿고 용서했고, 덕분에 그는 더욱 타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리언의 아름다움은 위험한 가면이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나’를 관리하며 살아갑니다. 꾸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보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해질 때 발생해요. 외모나 인기, 타인의 평가를 붙들기 위해 소중한 것을 조금씩 포기하고 있진 않나요? 내 마음속 다락방에 걸린 초상화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이 고전은 우리에게 타인의 환호 대신 내면의 양심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겉모습이 아닌 영혼을 가꾸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