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음악가 차이콥스키(1840~1893)의 대표적 발레 작품 중 하나인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 오데트 공주는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로 살다, 밤에만 인간으로 돌아와요. 발레 공연에서는 백조의 우아한 날갯짓에 슬픔이 묻어 있는 것 같죠.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삶도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선율 속에 어딘가 쓸쓸함과 애절함도 느껴지죠.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제국 시기 보트킨스크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광산 제철 관련 일을 했고, 어머니는 예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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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예민한 성격이었는데요. 한 번은 연주회를 다녀온 후, 머릿속에서 음악이 계속 울려 잠을 설쳤다고 해요. 그의 예민함은 열네 살에 어머니를 잃으면서 더 깊어집니다. 사춘기에 겪은 상실은 더욱 큰 상처를 남기죠. 점점 세상은 안정적이지 않게 느껴졌고, 감정의 기복도 커졌어요.

차이콥스키는 인간관계도 독특했어요. 오랜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과 13년 동안 편지 수천 통을 주고받으면서도 ‘절대 만나지는 않는다’는 규칙을 지켰다고 합니다. 타인과 연결되고 싶으면서도, 직접 마주했을 때 겪을 정서적 소모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예민한 차이콥스키의 자구책이었을지도 몰라요.

감정 기복이 컸던 차이콥스키는 우울증보다는 양극성 장애(조울증)에 더 가까운 것으로 추정돼요. 조울증은 평소보다 에너지가 넘치면서 기분이 크게 올라가는 시기와 심하게 가라앉는 시기가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 질환이에요. 차이콥스키가 마지막 교향곡 6번 ‘비창’을 만들던 시기, 그는 잠을 거의 안 자고 격렬하게 작업에 몰두해 첫 악장을 며칠 만에 완성했다고 친구에게 편지를 씁니다.

대개 교향곡은 환희와 승리로 끝맺는데요. ‘비창’의 마지막 악장은 촛불이 꺼지듯 고요하고 무겁게 잦아들어요. 격렬한 창작열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차이콥스키의 정신적 고통이 그를 천재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가 예민한 기질을 지키며 버텨온 시간을 존경하는 거죠.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차이콥스키처럼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의 사람이 많아요. 이들은 세상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에너지를 빨리 소모하기도 해요. 그래서 어떤 날에는 무언가를 더 이루기보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휴식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계를 유지한다면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큰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을 여유롭게 쓸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