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2026년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산업·금융 중심지 밀라노와 이탈리아 북동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돌로미티 산맥에 있는 코르티나담페초 사이의 거리는 400여㎞에 달하지만, 도시·자연형으로 경기를 분산 운영하기에 좋아 공동 개최지가 된 것으로 보여요. 오늘은 올림픽 성화가 타오른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로마 제국 4분할 이후 성장한 밀라노
고대 밀라노는 기원전 6세기 켈트족이 정착하면서 발전했어요. 기원전 3세기 말에는 밀라노가 로마 제국에 편입됐고, 점차 수도인 로마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가 됐죠. 3세기 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지중해를 둘러쌀 정도로 몸집이 커진 로마 제국을 4분할해서 통치하는 ‘테트라르키아(네 명의 통치자)’ 체제를 도입했는데요. 동방 황제·부제, 서방 황제·부제 지역 등 총 4곳으로 나눴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동방 황제를 맡았어요. 밀라노는 서방 황제가 사는 곳이자 행정 중심지로 지정되면서 위상이 더 높아졌답니다.
기원후 313년에는 크리스트교에서 분수령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서방과 동방의 황제가 함께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것이죠. 밀라노 칙령은 크리스트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정책으로, 두 황제가 밀라노에서 합의해 이름이 붙었죠. 밀라노 칙령 이후 크리스트교의 권위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어요. 4세기 말 로마 동방의 테살로니카라는 지역에서 인기 있는 전차(경주용 수레) 선수가 모함을 당해 부당하게 체포되자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는데요. 로마 군인들이 이를 강압적으로 진압해 민간인 수천 명이 학살됐습니다. 밀라노 주교(지역 교회 최고 책임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당시 동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에게 테살로니카 학살에 대해 참회할 것을 요구했어요. 황제는 결국 굴복해 사죄했죠. 교회의 권위가 황제의 권력 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중세 밀라노는 여러 이민족의 침입을 겪으며 시민 스스로 도시를 지키고 운영하는 ‘자치 도시’로 성장했어요. 이 과정에서 상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해 북이탈리아 도시 동맹의 중추로 자리 잡았어요. 15세기에는 스포르차 가문의 통치를 받으며 밀라노가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는데요. 특히 이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유명했어요. 그는 예수와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을 그린 ‘최후의 만찬’을 남겼고, 군사 공학·건축·과학 설계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지요.
이탈리아 통일의 기반이 된 ‘5일 혁명’
그러나 15세기 말 시작된 이탈리아 전쟁(1494~1559)은 밀라노를 유럽 강대국의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답니다. 이탈리아 전쟁은 이탈리아 반도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벌인 전쟁이었는데요. 특히 밀라노는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끊임없이 분쟁의 대상이 됐습니다. 1815년부터는 밀라노가 있는 북이탈리아 지역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됐습니다.
그러자 반(反)오스트리아 정서가 급격히 확산했습니다. 결국 1848년 3월 밀라노 시민들은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맞서 봉기했어요. 1848년 3월 18일부터 5일간 일어나 ‘밀라노 5일 혁명’이라 부르지요. 학생·노동자·상인 등 다양한 계층이 전투에 참가했고, 결국 오스트리아가 병력을 철수시켜 밀라노는 오스트리아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이후 밀라노 봉기 소식은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제1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1848~1849)으로 이어집니다. 1차 독립 전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통일 운동은 이후에도 계속돼 1861년 통일 국가인 이탈리아 왕국 성립으로 이어졌답니다.
통일 이후 밀라노는 급격한 산업화를 경험했어요. 그러나 전쟁의 아픔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를 벌이며 사회 혼란이 가중됐고, 극단적 민족주의·국가주의를 주장하는 ‘파시즘’이 성장했습니다. 파시스트당을 이끈 사람이 바로 베니토 무솔리니인데요. 무솔리니는 1922년 총리가 돼서 독일·일본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어요. 1943년 연합군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하자 이탈리아 국왕은 무솔리니를 실각시켰습니다. 독일은 곧 무솔리니를 구출해 그가 북이탈리아 지역 괴뢰(꼭두각시) 정권인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을 세우게 했지요. 밀라노는 이 정권의 행정 중심지 역할도 했답니다.
이 시기 북이탈리아에서는 독일·파시스트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 간 내전도 벌어졌어요. 결국 1945년 4월 25일 저항 세력이 반대편을 내쫓고 밀라노 등 도시를 장악했습니다. 이날은 오늘날까지도 이탈리아에서 ‘해방의 날’로 기념되고 있어요. 무솔리니는 밀라노를 떠나 스위스로 탈출하려 했지만 체포돼 총살당했죠.
3개 언어 쓰는 경계 도시 코르티나담페초
코르티나담페초는 이탈리아 북동부 알프스 산맥 돌로미티 산악 지대에 자리한 국경 도시로 밀라노와는 또 다른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중세에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고,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지금도 이탈리아어뿐 아니라 독일어와 라딘어(돌로미티 산악 지대 언어)를 함께 사용한다고 해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이 지역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이탈리아에 편입됐어요. 전쟁 당시 돌로미티 산맥 일대에서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맞붙었어요. 병사들은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 지대에서 혹한과 눈보라와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이 전투는 ‘하얀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혹독했다고 해요.
20세기 중반에는 알프스 관광 붐에 따라 산악 관광과 스키 산업 등이 발전한 국제적인 휴양지로 성장했어요. 특히 유럽 상류층이 많이 찾았죠. 1956년엔 이곳에서 제7회 동계 올림픽이 개최됐어요. 당시 올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가 경제를 재건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했음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