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지음 l 홍석영 옮김 l 출판사 풀빛 l 가격 1만3000원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 삽니다.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지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는 “행복이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장 좋은 것, 최고의 선”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으니 돈이나 지위가 행복은 아닐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묻고 답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니코마코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이름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행복을 바라며 책을 썼다고 보는 설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진 않아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理性)에 따르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행복은 ‘이성에 따라 행하는 덕이 있는 활동’이란 겁니다. 여기서 덕은 탁월함을 뜻해요.
그렇다면 인간의 덕, 인간의 탁월함은 무엇일까요? “덕은 중용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은 악덕의 특징이고 중용은 덕의 특징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가 덕이라는 거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다양한 사례를 듭니다. “돈이나 재산에서 중용은 너그럽고 후함이며 지나친 사람은 낭비하고 모자란 사람은 인색하다. 명예나 불명예의 중용은 긍지이고 지나침은 오만함이나 허영이며 모자람은 비굴함이다. 유쾌함의 중용은 재치이고 지나침은 익살이요 모자람은 무뚝뚝함이다.”
절제도 덕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절제란 욕망이 적당한 선을 지키며 커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또 욕망이 이성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해요. “절제하는 사람은 그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을 마땅히 추구해야 할 정도로, 마땅히 추구해야 할 때에 추구한다. 이야말로 이치에 맞는 것이다.” 가령 음식을 먹는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분량 만큼만 필요한 때에 먹는 사람이 ‘절제하는 사람’이란 겁니다. 과식이나 편식은 절제와 거리가 먼 거죠.
감정을 절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감정’을 달리는 말에 비유한다면, 자칫 말은 속도를 내다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 달릴 수 있어요. 이런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이성’이란 말 고삐를 당겨서 말이 지나치게 달리려 할 때마다 절제시켜 줘야 합니다.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중용으로 이끌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 그 말을 탄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한 행복은 관조적 활동에 있다고 봤어요. 여기서 ‘관조’는 다른 목적 없이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는 걸 가리킵니다. 욕구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의 힘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된 관조입니다. 관조는 단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꾸준히 노력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어요. 행복하려면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