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지음 l 송태욱 옮김 l 출판사 현암사 l 가격 1만3000원

대학생 ‘나’는 평화로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다 우연히 “나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나는 비밀스러운 분위기에 늘 혼자 다니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따르기 시작하죠. 그 선생님은 다가갈수록 뒷걸음질 치며 묘한 말을 던집니다.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이 닥치면, 누구나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지.”

우리는 흔히 악당이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하는 ‘악’은 흉악한 범죄나 타고난 성품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양심에서 눈을 돌려버리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평생을 도덕적인 지식인인 척 살아왔지만,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 추악한 비밀을 숨기고 있었던 선생님. 그 비밀은 소설 후반부 그가 남긴 두툼한 유서를 통해 충격적으로 드러납니다.

과거 선생님에게는 친한 친구 ‘K’가 있었습니다. 고지식할 정도로 순수한 구도자(도를 구하는 사람)였던 K는 가난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었고, 선생님은 K를 돕기 위해 자신의 하숙집에 데려와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하숙집 딸인 ‘아가씨’를 동시에 사랑하게 됩니다.

어느 날 K가 먼저 고백합니다. “나, 아가씨를 사랑하고 있어.” 그 순간 선생님의 마음속에서 우정은 사라지고 질투와 공포가 싹텄습니다. 아가씨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선생님은 비겁한 수를 씁니다. K에게 “도를 닦는다는 녀석이 연애라니, 정신이 썩었구나”라고 비아냥거린 것입니다. K가 괴로워하는 틈을 타 몰래 아가씨의 부모님에게 결혼 승낙까지 받아내 버리죠.

며칠 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K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유서만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은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속물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후 선생님은 평생을 죄책감이라는 감옥에 자신을 가둡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행복해질 권리를 스스로 박탈한 채 살아가는 형벌을 택한 것이죠.

작가는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물어옵니다. 친구를 배신해서라도 사랑을 얻고 싶어 하는 추악한 이기심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배신의 대가로 평생을 괴로워하는 양심이 공존합니다. 이 모순이 서로를 물어뜯는 전쟁터를 작가는 ‘마음’이라고 부르며 이 소설의 제목으로 정한 겁니다.

1914년에 쓰인 이 소설이 100년 넘게 흐른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선생님의 비겁함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에요. 남 탓을 하며 위기를 모면하려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선생님의 모습은 타인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것이 시대를 넘어 이 소설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