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최근 외국인 승객을 대상으로 바가지 택시 요금을 씌우는 일이 없도록 택시들에 영문 영수증을 발행하도록 했어요. 외국인도 승·하차 지점과 운행 거리·시간, 할증 여부 등을 파악해 요금을 많이 내는 일이 없도록 한 거죠. 버스, 지하철과 함께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택시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택시의 역사는 자동차 발명으로 시작됐지만, 자동차가 있기 전에도 오늘날의 택시와 비슷한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마차와 인력거예요. 17세기 유럽에서는 승객을 나르는 유료 마차 서비스가 시작됐다고 해요. 영국 런던의 여관들이 손님에게 마차를 대여해주기 시작하자, 영국 의회가 1635년 이를 합법화했어요.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도 이런 서비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각광받던 인력거는 우리나라에 개항기 때인 1870년대 들어왔습니다. 콜택시처럼 인력거 조합에 전화를 해서 인력거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초반에는 우리나라에 살던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했지만 점점 인력거가 보편화되면서 중산층, 노약자, 기생 등도 인력거를 타게 됐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동차형 택시는 19세기 자동차 산업 발달과 함께 등장하게 됩니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 서양의 대도시에서 자동차 택시가 운행됐죠. 독일에서는 빌헬름 브룬이라는 발명가가 택시 요금 계산기인 ‘택시미터(taximeter)’를 발명했어요. 택시라는 이름도 이 요금 계산기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1차 세계대전 때 병사들을 전쟁터로 수송하는 데 택시를 이용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참호(구덩이)전으로 유명한 프랑스 마른 전투가 대표적이죠.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 때 자동차 택시가 들어왔습니다. 일본인 운전사가 영업을 시작했는데, 전화로 불러서 이용했다고 해요. 요금은 1시간에 5원이었답니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7원 정도였으니, 지금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1시간에 약 16만원을 내고 택시를 탄 셈이죠.
이후 이용객과 택시가 늘어나면서 1920년대 후반에는 4인 기준 경성(지금의 서울) 시내 한정 거리·시간 불문 1원으로 이용료가 낮아졌습니다. 이 시기 택시 운전사는 양복에 모자를 썼는데, 야구 포수처럼 모자의 챙이 뒤로 가도록 돌려서 썼다고 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미국 영화 주인공이 모자를 돌려 쓰고 운전한 장면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해요.
하지만 택시 유행은 인력거꾼에게는 재앙 같았을 겁니다. 초반에는 택시 이용료가 비싸 소수 상류층만 탈 수 있었지만, 점점 택시 이용료가 내려가면서 인력거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죠. 택시 이용료가 1원이었던 1920년대 후반 인력거 이용료는 10리에 60전(0.6원), 하루 종일 이용할 경우엔 4원이었답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인 김첨지는 1920년대 경성에서 일하는 인력거꾼이었는데, 매우 가난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당시 택시 유행으로 인력거 산업이 저물어가는 시대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