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l 박상준 옮김 l 출판사 황금가지 l 가격 1만5000원
학교와 사회, 국가가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합니다. ‘독서문화진흥법’이라는 법까지 있지요. 그런데 레이 브래드버리의 과학소설(SF) ‘화씨 451’의 배경은 정부가 사람들의 책을 빼앗아 불태우는 사회입니다. 화씨는 온도를 표시하는 단위인데, 물이 어는 온도와 끓는 온도가 각각 화씨 32도와 212도예요. 이 작품의 이름인 화씨 451도는 책이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라고 합니다.
주인공 몬태그는 책을 태우는 방화수입니다. “몬태그는 100만권은 됨직한 금서(금지된 책)들의 목록을 쳐다보았다. 그 책들은 그의 점화기에서 나온 불꽃들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해가고 있다.” 어느 날 몬태그는 책 태우러 출동한 현장에서 책을 훔치고 맙니다. “그의 머리가, 양심과 호기심이, 떨리는 손가락들이 갑자기 도둑으로 변했다. 몬태그의 손가락들이 가슴에 대고 비비던 책을 방화복 안으로 쑤셔 넣었다.”
몬태그는 책을 훔치고 난 뒤 아내 밀드레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을 책으로 정리하기 위해 아마 일생을 바치다시피 한 사람도 있을 거야.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온갖 사람을 만나 보면서 이룩해 낸 업적을 나는 단지 1~2분 만에 재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몬태그가 일하는 방화서 서장 비티는 정부가 책을 불태우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햄릿(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차츰 줄어들었네. 기껏해야 한 페이지 정도 설명해 놓은 게 다가 되었지. 책들이 점점 더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네. 책들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지. 내용들도 죄다 말장난 비슷하게 가볍고 손쉬운 것들로 변해 갔지.”
눈여겨볼 점은 처음에 책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책 읽기 싫어하는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어렵거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 책은 멀리하고, 쉽고 재미있는 책만 읽다 보니 그렇게 됐던 것입니다. 쉬운 책만 읽으면 깊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어렵죠.
책이 금지되기 전 시대를 기억하는 파버 교수가 몬태그에게 말합니다. “책에는 아주 작은 숨구멍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붙어 있소. 책들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 숨구멍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이는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준다오.” 위험을 무릅쓰고 책을 훔치고 책의 가치를 깨달은 몬태그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책 지키는 일에 앞장서 나설까요? 줄거리를 다 얘기하면 곤란하니까, 소설의 결말이 절망적이라는 것만 말하겠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사회가 현실이 돼가고 있습니다. 책을 빼앗지 않아도 사람들 스스로 책과 멀어지고 있으니까요.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에서 작가는 지진 뒤 온전히 남은 건물이 두 채뿐이라면, 하나는 병원으로 다른 하나는 도서관으로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독서가 우리네 삶의 중심이에요. 도서관은 바로 우리의 두뇌죠. 도서관이 없다면 문명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