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열리는 신년 행사에서는 새해 복을 기원하며 떡을 자르고 나눠 먹곤 합니다. 일본에서는 새해쯤 모찌(일본식 찹쌀떡)를 먹다가 목이 막혀 병원에 실려 가는 사람이 생긴다고 해요. 우리가 새해에 떡국을 먹는 것처럼 일본에는 새해에 모찌를 먹는 풍습이 있거든요. 이런 떡은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일까요?
인류는 신석기 시대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신석기 시대에는 곡식 가루를 물에 타 가열해 먹는 죽 같은 형태로 먹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시루(바닥에 구멍이 뚫린 조리 도구)가 발명됐어요. 시루는 물을 끓이는 솥 위에 얹어 사용하며, 수증기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죠. 이 시루로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요리가 바로 떡입니다. 시루는 청동기 유적에서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부터 시루로 떡을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시루는 고조선과 삼국 시대를 거쳐 계속 사용됐어요. 중국 한나라의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고조선 영토를 한나라의 지방 행정 체제(군현)로 구성했는데, 지금의 평양 일대에는 낙랑군이 들어섰어요. 평양의 낙랑군 유적에서는 청동 시루와 토기 시루가 출토됐답니다. 또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는 시루를 사용하고 있는 여성 그림이 남아 있고요. 떡을 찌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2대 왕인 남해왕이 사망한 뒤 왕위를 누가 계승할지를 정하는 데 떡이 사용됐다고 해요. 당시 지혜로운 사람은 치아가 더 많다고 여겼기 때문에, 떡을 깨물어 더 많은 잇자국을 남긴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로 한 것이죠. 이때 떡에 더 많은 잇자국을 남긴 유리왕이 신라의 3대 왕으로 오르고, 함께 떡을 깨물었던 탈해왕이 신라의 4대 왕으로 즉위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떡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더욱 발전했어요. 고려 인종 때 수도를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서경(지금의 평양)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묘청도 떡을 이용했답니다. 묘청은 서경 천도를 설득하기 위해 서경 주변 대동강에 오색 기운이 서려 있다고 주장했어요. 실제로 당시 대동강에 오색빛이 감돌았다고 하는데, 이는 묘청이 조작한 겁니다. 큰 떡을 만들어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기름을 넣었다고 해요. 이 떡을 강물에 던지자 기름이 새어 나와 강물에 찬란한 색이 비쳤죠. 하지만 묘청의 반대파가 잠수를 잘하는 사람을 동원해 가라앉은 떡을 발견하는 바람에 들통나고 말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떡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도 널리 만들어 먹던 음식이랍니다. 재료나 요리법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죠. 최남선의 ‘조선상식’에 따르면 중국 떡은 밀가루로 만들어 굽고, 일본 떡은 찹쌀가루로 만들어 치고, 한국 떡은 멥쌀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