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산 언덕에 있는 게티 센터. 게티 센터는 미술관뿐 아니라 도서관, 보존 연구소 등이 한 데 모인 예술 단지입니다. /위키피디아

미국 서부 대도시 로스앤젤레스(LA)는 스페인어로 ‘천사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이름처럼 이 도시에 가면 정말 천사들이 살 것 같은 곳이 있어요. 시끌벅적한 도심을 벗어나 산타모니카산 언덕 위로 올라가면 하얀 건물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있어요. 예술품이 모여 사는 마을,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예술 단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티 센터’입니다. 로스앤젤레스를 찾는 여행자라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히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지요.

LA 산불에도 끄떡없는 방재 시스템

그런데 왜 미술관 이름이 게티 센터일까요? 사실 게티 센터는 하나의 미술관이 아니에요. 이곳은 게티 미술관, 게티 연구 도서관, 보존 연구소, 게티 재단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예술 단지예요. 게티 미술관은 두 곳이에요. 아름다운 산타모니카산 언덕 위에 1997년 문을 연 게티 센터 내 미술관과 1974년 개관한 ‘게티 빌라’입니다.

말리부 해변 근처 산자락에 있는 게티 빌라. 게티 센터에서 12㎞ 떨어진 곳에 있어요. /이은화 작가

게티 빌라는 게티 센터에서 약 12㎞ 떨어진 말리부 해변 근처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요. 게티 빌라는 고대 로마 귀족의 호화로운 별장이었던 파피리 빌라(Villa dei Papiri)를 본떠 지었어요. 로마식 분수와 정원, 프레스코 벽화와 모자이크 바닥, 곳곳을 장식한 고대 조각상까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로마로 간 듯한 느낌을 주죠.

주목할 점은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 둘 다 처음부터 화재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는 사실이에요. 방화 콘크리트 벽과 정교한 스프링클러, 화재에 대비한 380만L 규모의 물탱크까지 갖추고 있죠. 주변의 잡초를 수시로 제거해 화재 시 불이 번질 가능성도 미리 차단하고 있죠. 이 덕분에 작년 1월 로스앤젤레스를 덮친 대형 산불 속에서도 게티 센터와 빌라는 무사할 수 있었어요. 소장품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방재 시스템을 갖추고 대비를 해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에요.

억만장자가 세운 하얀 나라

그렇다면 도심도 아닌 산자락에 이렇게 거대한 미술 단지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영국계 미국인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진 폴 게티(1892~1976)예요. 그는 석유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뒤 1954년 자신의 집을 개조해 처음 미술관을 열었어요. 수집품이 늘어나자 1974년 게티 빌라를 세웠고, 1976년 사망하면서 7억달러(약 1조원)에 달하는 유산과 평생 모은 수집품들을 모두 게티 재단에 기증했어요. 재단은 이를 바탕으로 1997년 산타모니카산 언덕에 게티 센터를 열었습니다.

게티 센터는 축구장 63개 규모인 45만 ㎡에 달하는 부지에 지어졌어요. 센터 테라스에 서면 아름다운 로스앤젤레스 시내와 태평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탁 트인 전망과 인상적인 백색의 건축물, 세계적인 부호가 수집한 소장품까지 갖추고 있어 게티 센터는 개관하자마자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가 됐어요.

센터 설계는 현대 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가 맡았어요. 고대 로마 빌라를 재현한 게티 빌라와 달리, 게티 센터는 백색의 미학을 앞세운 모더니즘 건축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어요. 경사진 자연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는 전시장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마치 하얀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건축가는 큰 창을 통해 자연광을 내부로 최대한 끌어들였어요. 백색 건물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햇빛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줘요.

세계 명화의 전당

아무리 건물이 멋져도 미술관의 진짜 힘은 결국 소장품에서 나와요. 게티 미술관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명작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폴 세잔 등 서양 미술사를 빛낸 화가들의 작품이 이곳에 모여 있어요.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입니다. 게티 센터에서 볼 수 있어요. /위키피디아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반 고흐의 ‘아이리스’예요. 이 작품은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것으로, 푸른색의 아이리스 꽃들이 역동적인 붓질로 표현돼 있어 관람객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아요. 몸도 마음도 아팠던 당시 고흐의 상태와 달리 그림은 밝고 생기가 가득해요. 아마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렸기 때문일 거예요. 생전 고흐는 이 그림을 습작으로 여겼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명작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게티 센터에는 클로드 모네의 작품도 여러 점 있어요. 이 작품은 모네의 ‘루앙 대성당’이에요. /위키피디아

인상주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의 작품도 여러 점 있어요. 모네는 빛과 대기의 변화에 따라 같은 풍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탐구한 화가죠. 게티 미술관에서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루앙 대성당’을 만날 수 있어요. 1893년 모네는 루앙 대성당 맞은편 건물에 임시 작업실을 얻었어요. 이듬해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빛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는 성당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어요. 무려 서른 개의 캔버스를 동시에 펼쳐놓고 말이죠. 이 가운데 게티가 소장한 은은한 청회색이 감도는 작품은 모네가 아침 무렵에 그린 거예요.

높은 언덕에 지어진 문턱 낮은 미술관

게티 센터는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있지만 해마다 세계에서 180만명 넘는 사람이 찾아와요. 철저한 방재 시스템, 빛과 자연을 품은 건축, 교과서에 나오는 명작 소장품까지. 게티 센터는 예술을 어떻게 보호하고,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에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무료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게티 센터를 더 특별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어요. 아무리 훌륭한 예술 작품이 많은 미술관이라도 입장료가 비싸다면 자주 찾아가기 부담스럽겠죠. 그래서 게티 센터는 높은 언덕 위에 지어졌지만,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문턱 낮은 미술관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