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미얀마는 총선을 시작했습니다. 이달 말까지 선거구를 나눠 세 차례 치러지는데요. 민주적으로 선출된 기존 정부를 2021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몰아낸 이후 처음 실시되는 총선입니다. 그런데 이번 미얀마 총선은 세계의 비판을 받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그래픽=이진영

군부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정권을 넘기겠다고 했지만, 총선에 출마한 후보 중 다수가 친군부 성향입니다. 게다가 군부가 전국 각지에서 반군이나 소수 민족 무장 단체와 충돌하고 있어, 많은 지역에서 투표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예요.

미얀마는 우리나라처럼 식민 지배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입니다. 독립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쿠데타가 일어나 지금까지 60년 넘게 군부가 정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요. 오늘은 미얀마에 어떤 과정을 거쳐 군사 정권이 세워지게 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세기 영국이 무너뜨린 미얀마 전통 왕조

미얀마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민족은 몬족입니다. 몬족은 오늘날 미얀마 남부와 태국 중부에 기원전 3000~2000년쯤부터 살았던 민족이에요. 이들은 일찍부터 인도와 교역하면서 불교와 문자를 받아들이고 여러 왕국을 세웠습니다.

기원후 11세기부터 미얀마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라와디강 중류 지역에서 새로운 세력이 떠오릅니다. 바로 북쪽에서 내려온 버마족이에요. 버마족은 바간 왕조(849~1287)를 세우지요. 버마족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노야타 왕 때 바간 왕조는 이라와디강 부근을 통일해 제국을 세웁니다. 아노야타 왕은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만들려면 이념이 통합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죠.

1885년 꼰바웅 왕조의 수도였던 만달레이에 영국군이 들어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꼰바웅 왕조는 1885년 영국에 무너졌어요. /위키피디아

이후 수세기 동안 따웅우 왕조(1587~1752), 꼰바웅 왕조(1752~1885) 등 여러 왕조가 등장하며 주변 소수 민족과 갈등과 통합을 반복했어요. 19세기 꼰바웅 왕조는 이미 인도를 장악한 영국에 점차 영토를 잃었어요. 결국 1885년 꼰바웅 왕조는 영국에 무너졌고, 미얀마는 인도의 한 지방이 됐죠.

영국은 꼰바웅 왕조의 왕을 인도로 추방하고, 미얀마를 자원 공급지로 활용했습니다. 이라와디강 삼각주는 대규모 쌀 농장으로 개발됐어요. 어느새 식민지 미얀마 사회에는 영국인, 인도인, 미얀마인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위계 구조가 생겼어요. 이 구조는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깊은 민족적 적대감을 낳았지요.

식민지 시기 또 다른 부작용은 소수 민족 문제였어요. 당시 미얀마 전체 인구 중 소수 민족이 약 3분의 1을 차지했죠. 영국은 버마족을 견제하려고 소수 민족 사람들을 군인·경찰로 적극적으로 기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버마족과 소수 민족 사이 불신이 심해졌어요.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미얀마에서 내전과 분리주의 운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립을 위해 외부 힘을 빌린 미얀마

1930년대 미얀마는 여전히 영국 식민지였지만 서양식 교육을 받은 버마족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빠르게 성장했어요. 학생·지식인·승려를 중심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벌어졌죠. 이들은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삼았어요. 이때 구심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미얀마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아웅산입니다.

미얀마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아웅산. 아웅산은 미얀마의 국부(國父)로 불립니다. /위키피디아

아웅산은 독립하려면 외부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1년 일본군은 동남아 전역으로 진격했어요. 이때 일본은 ‘아시아 해방’을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기에 미얀마 민족주의자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며 협력해 달라고 했죠. 결국 아웅산과 동료들은 일본과 손잡고 버마독립군(BIA)을 조직했어요. 일본은 순식간에 미얀마에서 영국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벗어났다는 해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일본이 미얀마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것이죠. 미얀마인들을 전쟁에 강제로 동원하기도 했어요. 이때 아웅산은 다시 한번 결단을 내립니다. 일본의 반대편이었던 미국·영국 등 연합국과 비밀리에 접촉하며 일본에 맞선 것이죠. 결국 1945년 일본군은 전쟁에서 패배합니다.

아웅산은 1947년 7월 미얀마 독립을 반대했던 보수파에 암살당하며 조국의 독립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이후 1948년 1월 4일 미얀마는 마침내 영국에서 독립했지요. 새로운 미얀마에 들어선 민주주의 정부는 소수 민족에 자치를 허용했어요.

군부에 짓밟힌 민주화 운동

그러나 독립 이후 미얀마는 불안정했어요. 소수 민족의 반발, 공산주의 세력의 무장 투쟁 등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군부는 이런 상황이 문민 정치(군인이 아닌 국민이 하는 정치)의 무능 때문이라고 몰아갔어요. 결국 1962년 3월 육군참모총장이던 네윈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미얀마는 오랜 군사 정권 체제로 들어섰습니다. 군부는 은행·무역·산업을 국가 소유로 만들고, 외국 기업·자본을 쫓아냈어요. 언론은 철저히 통제됐고 정당 활동도 금지됐죠.

아웅산의 딸 아웅산 수지. 아웅산 수지는 2021년 쿠데타 이후 군사법원에서 징역 27년을 선고 받고 현재 수감 중이에요. /로이터 연합뉴스

1980년대 후반 경제 침체가 심해지자 정권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1988년 8월 8일 전후에 전국적 민주화 시위인 ‘888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요. 학생, 노동자, 승려 등이 거리로 나서 민주화를 요구했어요. 그러나 군부는 이를 잔인하게 진압해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어요. 군부는 이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1990년 총선을 실시합니다. 선거에서 아웅산의 딸인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압승했는데요.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시하고 아웅산 수지를 자택에 일정 기간 감금했습니다.

이후 군부는 ‘선거는 허용하되, 권력은 넘기지 않는다’는 전략을 반복하고 있어요. 헌법, 의회, 정당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 권한은 모두 군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2015년, 2020년에도 민족민주동맹이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군부가 선거 부정이 자행됐다며 2021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거든요. 아웅산 수지는 2022년 군사 법원에서 부패 등 혐의로 징역 33년을 선고 받고 이후 형량이 27년으로 줄어 현재 수감 중이에요.

2021년 3월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미얀마 전통모자를 쓴 교사들이 쿠데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AP 연합뉴스

이달 말까지 치러지는 총선은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축출한 지 4년여 만에 치러지는 선거예요. 하지만 결국 군부가 정치적 정당성을 갖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 받고 있습니다.